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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콘서트
백유선 | 두리미디어 | 2010-01-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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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 콘서트
백유선 | 두리미디어 | 2010-01-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결정적 장면 29가지
그 변혁의 드라마를 만난다! “역사를 아는 자는 무너지는 담장 아래 결코 서지 않는다.” 제왕학의 교과서로 불리는 중국 당나라 사서 《정관정요》에 나오는 말이다. 이는 역사를 아는 것, 더 나아가 역사가 본연의 진실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 책은 ‘흥미’에만 초점을 맞춰 종종 역사 왜곡을 낳는 대중 역사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역사 본연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선사 시대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우리 역사에서 가장 긴박하고 파란만장했던 29장면을 선별해 한국사 전반을 깊이 있고 명쾌하게 풀어썼다. 기록 아래 숨겨진 ‘진짜 역사’를 견인하다 교양인이라면 바로 알아야 할 한국사의 참모습! “단군은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했다.” “삼족오는 고구려의 상징이다.” “고구려를 건국한 사람은 주몽이다.” “진성여왕은 남자관계가 복잡했다” “고려는 일부다처제 사회였다.” “나선 정벌은 조선이 러시아를 정벌한 사건이다.” “황희는 청백리였다.” “대명천지는 밝고 환한 세상이라는 뜻이다.” “친일파들은 모두 창씨개명에 앞장섰다.” “남대문이란 이름은 일제의 잔재다.” “신탁 통치는 소련이 먼저 제의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실로 믿고 있는 한국사 상식들이다. 과연 그럴까? 얼마 전 고구려를 소재로 다뤄 큰 인기를 모았던 한 드라마가 심각한 역사 왜곡 때문에 논란을 빚은 적이 있었다. 관련 학자들이 논문을 통해 드라마의 문제점을 일일이 지적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얼마나 ?요한지 보여 준 사례다. 흔히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류가 과거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 역사는 오류와 위조, 불확실한 속설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국사 상식 중 적지 않은 부분이 실제 사실과 다르다. 때로는 기득권의 권력 유지를 위해 때로는 시대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혹은 가설에 풍문이 더해져 잘못된 상식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굳어진 예도 많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사실로 믿고 있는 역사 오류 중 20가지를 엄선해 별도 장으로 구성함으로써 내용의 깊이를 더했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역사의 진실한 면면을 들여다보며 박제된 지식에 온기가 더해지고 역사의 흐름이 새롭게 재편되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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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인이라면 꼭 알아야 할 일본의 역사왜곡 21가지
송영심, 오정현 | 미르북스 | 2009-08-2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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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인이라면 꼭 알아야 할 일본의 역사왜곡 21가지
송영심, 오정현 | 미르북스 | 2009-08-2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일본의 역사 왜곡 의도를 정확히 꿰뚫고 바로잡아 역사의 진실을 알려야 할 것이다.”
일본의 역사왜곡과 우리나라와의 역사관 차이는 해가 거듭할수록 그 골이 뚜렷해지고 깊다. 일본의 우익과 이를 후원하고 있는 일본 대기업들, 언론과 출판이 너나 할 것 없이 60년 전의 제국주의 향수병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침략과 학살의 역사를 이제 부인하고 미화하고 있으며 이웃나라의 영토까지도 넘보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다. 일본의 학생들이 10년 후, 또 다시 과거의 침략과 학살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을까 우려되며 ‘독도는 일본 땅이라 배웠다’며 독도 찾기 운동을 벌일지 모르는 일이다. 역사왜곡 교과서로 비판받고 있는 일본 후소샤판 역사교과서에 대해 잘못된 내용을 철저히 분석해 왜곡된 일본 역사를 바로잡을 필요성과 단순히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 보다는 어떤 부분이 어떻게 왜곡되었으며 어떻게 바로 잡혀야 하는지, 그리고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그 방향을 제시할 필요성으로 『일본의 역사 왜곡 21가지』가 출간되었다. 2005년 올해는 한일 수교 40년, 해방 60주년, 그리고 을사조약 100년이 되는 해이다. 한일 우정의 해이기도 한 올해, 한국은 과거 한일 관계의 가슴 아픈 상흔을 돌아보며, 한일 관계를 재조명해 보고자는 뜻 깊은 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해에 일본의 시마네현은 독도를 ‘다케시마의 날’로 지정하였고, 일본의 한복판인 도쿄에서 역사를 왜곡한 일본 우익 교과서가 향후 4년 간 수백 명의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로 채택되었다. 역사는 진실된 눈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왜곡되거나 편벽되어서는 안되며, 과장되거나 미화하여 기록해서도 안된다. 역사 속에 엄연히 있는 사실을 없다고 우기거나, 없는 사실을 있다고 우겨서도 안된다. 그런데 과거사를 망각한 일본은 분명한 역사 기록이 남아 있는 독도를 일본 국토라고 우기고, 일본 문부성은 과거의 잘못을 왜곡, 미화하여 기록한 일본 우익의 역사 교과서를 검인정 통과시켰다. 일본이 의도하고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이러한 도발을 서슴지 않고 자행하는 것일까?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쟁을 도발할 수 없도록 규정한 평화 헌법을 제정하였다. 그런데 전후 60년이 지나 세계 경제대국이 되자, 일본 우익은 일본을 군사 대국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즉 그들은 세계를 전쟁의 포화 속에 몰아넣었던 60년 전으로 돌아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군사대국’이 되고자 하며 이를 위해 평화헌법을 개정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 앞서서 추진한 것이 바로 ‘역사 교과서 왜곡’이다. 독도에 대한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에도 중요한 이유가 있다. 어획량을 위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이 아니다. 독도는 ‘미래 대체 에너지’의 보고이자 군사 전략상으로 매우 중요한 기지가 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이러한 일본의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는 모든 내용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기술하였으며, 크게 왜곡되고 있는 21가지를 일제강점기, 개화기, 조선시대, 고대사 순으로 내용을 분석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도표와 지도 사진 자료도 함께 실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독도의 역사와 지리, 환경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인식하고 우리의 것을 지켜 나가야 한다. 어떤 역사 왜곡의 파도가 밀려오고, 거짓의 역풍이 밀려와도 흔들리지 않고 평화를 추구하기 위한 진실의 노를 저어 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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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명숙
한명숙 | 행복한책읽기 | 2010-04-3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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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명숙
한명숙 | 행복한책읽기 | 2010-04-3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한명숙 전 총리,‘시련의 한복판’에서 펜을 들다
한명숙 전 총리가 생애 첫 자서전을 냈다. 두 번의 국회의원과 두 번의 장관직(여성부, 환경부)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총리직 수행을 끝으로 조용히 자연인 한명숙으로 돌아가려 했던 한 전 총리가 『한명숙』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딴 자서전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노무현, 김대중 두 대통령의 서거 이후 깊은 슬픔 속에서도 묵묵히 전직 대통령의 유지를 잇는 일에만 몰두해오던 그가 펜을 들고 세상을 향해 다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이 책 『한명숙』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 ‘진실’ 이란 말에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진실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다른 수식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지금 저에게 진실을 설명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난감합니다. 이미 제 삶과 명예에 잔뜩 먹칠을 해 놓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진실을 보여줄 것인가. 결국은 제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명숙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진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한명숙이란 이름에 흠집을 내놓은 사람들을 향한 변명이 아닙니다. 이 글은 저들의 조작과 음해에도 저를 믿어주고 흔들림 없이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향한 대답입니다. ‘세상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을 삶으로 증명하다 이 책에는 한 총리의 지나온 삶이 5부로 나뉘어 담겨 있다. 1부 결혼, 그리고 긴 이별의 시작에는, 사업가인 아버지와 간호사였던 어머니가 꾸리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평양에서 서울로 피난을 내려오면서부터 겪게 된 가난과,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남편이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으로 가게 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2부 결핍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감옥에 있는 남편의 옥바라지와 더불어 6남매 중 장녀로서 친정의 살림을 책임지기 위해 생업 일선에 나서는 상황이, 3부 무소의 뿔처럼 홀로 서다에는 처음에는 직장 일로서 시작한 ‘크리스챤아카데미’ 활동을 통해 서서히 이 나라의 사회문제와 여성문제를 자각하게 되고, 구습과 열배감에 젖어 있는 여성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여성 사회운동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 과정과 그 활동으로 인해 시국사범으로 감옥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당하지만, 오히려 그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며 자신을 더 단단하게 단련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4부 낡은 시대가 무너지는 소리에는 13년 반의 형기를 마치고 나온 남편과 재회한 후 가족법 개정운동과 민우회 활동을 통한 다각적이고도 체계적인 여성운동을 전개하여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여성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지막 5부 한명숙 정치인이 되다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부름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여성부, 환경부 장관을 거치며 직면했던 문제들과 이를 풀어나가는 대화와 이해의 해결방식, 그리고 한명숙 특유의‘부드러운 열정의 리더십’을 보여준다. 그리고 부기된 <한명숙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는 한명숙에 대해 잘못 알려져 있거나 세간에 드러나지 않아 오해를 사는 몇 가지 편견들에 대해 짚어준다. 우리 현대사가 만든 인물, 한명숙 이 책을 보면 시대가 한명숙을 만들었고 한명숙이 시대를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우선 한명숙은 처음부터 정치에 뜻을 두었거나 의지를 가지고 여성운동에 뛰어든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는 한명숙을 반독재투쟁가로, 여성운동가로, 정치인으로 키우고 단련시켰다. 시국사범으로 신혼 6개월 만에 투옥된 남편으로 인해 전혀 다른 인생의 길로 접어들게 되면서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 활동을 통해 사회문제와 여성문제를 자각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자각이 머릿속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명숙은 자신의 자각을 현장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며 스스로를 성장시켜 나갔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산 것이다. 정치에 뜻을 두지 않았던 한명숙이 국회의원, 장관, 총리를 역임하는 큰 정치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련에 지지 않고 시련을 통해 단련되다 남편의 투옥과 생활을 옥죄는 가난 그리고 끝내는 자신마저 감옥에 갇히는 고난 속에서도 한명숙은 시련에 굴복하지 않았다. 엄혹한 독재의 시대는 한명숙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견디기 힘든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남편의 옥바라지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삶을 비관하거나 좌절하지 않았고, 주어진 일, 해야 할 일을 사명감과 희열을 가지고 했다. 감옥에서는 책을 읽고 명상을 하면서 자신을 다스렸고, 출옥을 한 이후에는 강고한 사회적 편견과 맞서며 여성운동 일선에서 싸웠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그는 보다 큰 틀에서 세상을 보고 행동하며 자신의 삶과 시대를 변화시켜 나가는 사람으로 성장해갔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달려가다 한명숙의 삶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필요성을 느끼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싸우는 삶이었다. 여성문제가 치열한 고민이었을 때는 여성의 삶을 변화시키는 현장에서 일했고, 정치적으로 자신의 역할이 필요할 때는 그 부름에 응했다. 여성운동가로서, 안정된 행정관료로서 이미 얻은 명성이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다시 자신을 필요로 하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것이 이제까지 한명숙이 살아온 방식이고, 그 삶의 태도가 지금의 한명숙을 만들었다. 부드러운 열정은 꺾이지 않는다 한명숙의 얼굴은 그가 거쳐온 역경의 삶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온화하고 부드럽다. 지금까지 여성운동가로서 정치인으로서 보여온 그의 말과 행보는 결코 최전선에서 싸워 온 투사의 모습이나 정치 지도자로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뿜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에겐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부드러운 열정과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다. 바로 그것이 온유한 귀부인처럼 보이는 한명숙이 정치인으로서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이유이다. 부드러운 열정은 꺾이지 않는다. 부드러움은 일견 약하고 희미해 보이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저들’까지 끌어안고 함께 나아가는 힘, 그것이 바로 부드러운 열정의 숨겨진 힘이다. 거대한 벽을 거대한 문으로 만드는 사람 자기 스스로를 과시하거나 설명하지 않으며 열정적으로 그리고 침착하게 일해 온 사람, 그래서 시대와 함께 했던 고난에 찬 삶이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 이제 시대가 자신에게 맡긴 소명을 다했다고 믿으며 조용히 물러서려 했으나 다시 시대의 부름을 받은 사람. 한명숙은 다시 원치 않았던 싸움터의 한복판에 섰다. 결코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될 것을 예감하고 있지만, 그는 다시 거대한 벽을 거대한 문으로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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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향신료의 역사
장 마리 펠트 | 좋은책만들기 | 2010-06-1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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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향신료의 역사
장 마리 펠트 | 좋은책만들기 | 2010-06-1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그 동안 우리는 먹고 사는 데 급급한 나머지 식생활에서 냄새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누리는 일이란 미식가나 호사가들이나 할 법한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니 후각의 즐거움을 알 리 없고 그 감식안 또한 세련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후각의 즐거움에 무심한 태도는 향신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즉 향신료를 가까이 하는 직업인이나 특별한 미식가가 아닌 이상 향신료에 신경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향신료가 물론 후각에만 관계되는 것은 아니다. 미각과도 관계가 크다. 하지만 향신료 하면 일차적으로 이국적인 냄새를 떠올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무엇보다 후각의 즐거움과 관계된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 책은 바로 그 후각의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향신료에 관한 이야기를 쓴 것이다. 현재 프랑스 메츠대학교 식물학과 명예교수이자 유럽생태학 연구소 소장인 저자 장-마리 펠트는 동서양의 각종 향신료와 그 의학적인 효과들, 그에 얽힌 에피소드들, 그리고 그것들을 이용한 특별한 조리법들에 이르기까지 고대로부터 길고 긴 역사와 더불어 풍요롭고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값진 재물로서의 향신료 스바의 여왕, 선원 신드바드, 마르코 폴로 등 동양의 신비를 환기시키는 전설적 인물들은 모두 향신료와 관련이 있다. 또 성서에도 기원전 10세기경 솔로몬을 방문한 스바의 여왕이 금과 많은 보석, 방향물(芳香物)을 선물로 드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방향물’이란 맛과 향에 변화를 주기 위해 음식이나 음료에 첨가하는 모든 물질을 가리킨다. ‘향신료’(e′pice)라는 단어는 1150년경에 프랑스에 나타났는데, 이는 프랑스어 ‘espe?ce’(돈)를 가리키는 라틴어 species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렇게 처음부터 금과 향신료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금과 향신료는 역사 속에서 가장 값진 재물의 동의어로 남게 되었다. 치료와 향기, 저장수단으로서의 향신료 바빌론의 왕은 향신료를 넣은 요리와 포도주를 좋아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기원전 330년경 페르시아에 침입했을 때 다리우스 2세의 궁전에서 300명에 가까운 요리사와 향신료만을 담당하는 수많은 노예들을 보았다. 고대 이집트 역시 약용식물과 향수와 방향물을 신들에게 봉헌물로 바치거나 사람들의 병을 치유하고 향기롭게 하는 데 이용했다. 메로빙거 왕조가 쇠퇴하기 시작하자 많은 향신료가 다시 서양의 귀족과 재력가들, 그리고 수도원 등의 식탁에도 등장한다. 한편 일반사람들이 향신료에 심취한 데에는 음식물을 저장하는 수단이 열악한데다 이용 가능한 먹을것들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완두콩, 잠두콩, 콩류, 뿌리들을 주된 양식으로 삼았기에 그 밋밋한 음식재료들을 맛나게 해주는 향신료에 열광했던 것이다. 또한 식료품의 냉장시스템이 부족한 탓에 고기류가 쉽게 부패했는데, 향신료를 넣은 소스가 상한 맛을 감춰줄 수 있었다. 富의 상징으로서의 향신료 로마에서 향신료는 싼 값에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 메로빙거 왕조가 쇠퇴하기 시작하자 많은 향신료가 서양의 귀족과 재력가들, 그리고 수도원의 식탁 위에 등장한다. 그리하여 손님들은 자신들을 초대한 집의 요리 맛과 부(富)의 진정한 상징이 된 향신료들을 보고 그 집 주인을 평가했다. 귀족들은 양념들 중에서 가장 비싼 것들을 선호했다. 왜냐하면 비용이 요리의 가치와 식탁의 품격을 좌우하며 풍미 또한 돋우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맛좋은 향신료들을 손에 넣기 위해 전 세계를 탐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음식과 약품, 종교용품으로서의 향신료 18세기부터 향신료들(여러 가지를 혼합한 향신료들)을 주성분으로 해서 만들어진 양념들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난다. 뇌물로의 오용은 줄어들고, 요리의 맛은 그 자체로 인정되었다. 오늘날, 여전히 동양에서는 막대한 양의 향신료가 소비되고 있는 반면(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인도에서 생활하거나 체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서양에서는 중세시대에 그토록 높이 선호됐던 강렬한 맛들이 좀 소홀히 되는 경향이 보인다. 예를 들면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포도주에 향신료가 첨가되지 않는다. 향신료의 특혜는 몇몇의 리큐어와 아페리티프 종류에 주어지고 있을 뿐이다. 이집트에서 향료는 시체의 부식방지와 미라로 만들기 의식에 주된 역할을 한다. 고대 이집트의 왕 람세스 3세(기원전 12세기)는 향료를 획득하기 위해 더욱 모험적인 원정을 감행했다. 그는 해양원정대를 편성해 홍해 북쪽에서 남쪽까지를 항해한 후 아라비아반도의 해안을 따라 유프라테스 강까지 페르시아 만을 거슬러 올라갔는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인 유프라테스 강 유역은 당시 향신료와 방향물 보급의 진원지였다. 하지만 그 후 몇십 년 동안 생활의 변화의 추구와 타문화에 대한 호기심은 향신료에 대한 취향에 새로운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주택이나 아파트들의 부엌에는 옛날 향신료 상점들을 매력적으로 장식했던 일련의 전통적인 향신료 단지들이 비치되고, 우리처럼 이국 정취의 애호가들이면서도 ‘맛좋은 요리’에 대해 몹시 까다로운 사람들에게도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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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화랑세기/해동고승전
김대문, 각훈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09-10-2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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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화랑세기/해동고승전
김대문, 각훈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09-10-2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화랑세기』와 『해동고승전』은 모두 원본이 남아 있지 않고, 필사본만이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필사본 『화랑세기』에서 40%, 『해동고승전』에서 60% 정도를 발췌해 번역한 것이다.
화랑과 승려들의 이야기 『화랑세기』와 『해동고승전』 한국 문화는 ‘유불도’ 3교의 자양분을 토대로 1,500년 이상을 이어왔다. 유교·불교·도교는 우리들의 내면 깊숙이 흐르고 있다. 유불도 3교는 모두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것이었지만, 우리의 환경과 정서에 맞게 변화를 거치면서 우리 것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신라에는 3교를 포함한 풍류도(風流道), 즉 선교(仙敎)라는 것이 있어 사람들을 교화시켰다. 집안에서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함은 유교의 가르침이고, 자연 그대로 행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행함은 도교의 주장이며, 모든 악한 짓을 하지 말고 착한 일만 받들어 행함은 불교의 교화였다. 선교를 따르는 무리들을 화랑이라고 불렀으며, 그들의 이야기는 『화랑세기』에 전한다. 선교만큼이나 고대인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 불교였다. 불교에서는 불보·법보·승보 등 3보를 가장 중요시한다. 이들 가운데 승보, 즉 부처와 경전을 모두 배우고 따르는 승려들을 살펴봄으로써 고대의 불교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승려들의 전기로는 김대문이 지은 『고승전』이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고려 시대에 각훈이 편찬한 『해동고승전』이 전하고 있다. 따라서 화랑과 승려의 삶과 신앙은 『화랑세기』와 『해동고승전』을 통해 살필 수 있으며, 한국문화의 이해에 좀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화랑세기』와 『해동고승전』은 모두 원본이 남아 있지 않고, 필사본만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이들 책들이 진본이 아닐 수 있다는 설이 대두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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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황제를 지배한 여인들
시앙쓰 | 미다스북스 | 2012-05-0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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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황제를 지배한 여인들
시앙쓰 | 미다스북스 | 2012-05-0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찬란한 태양 아래 드러난 중국의 역사는
모두 은밀한 달빛 속에서 만들어졌다! 천하의 권력을 쥔 황제, 황제를 지배한 여인들! 밤의 중국사를 지배한 여인들의 역사 황제를 차지하는 순간, 운명이 바뀐다 중국 역사에서 황제는 권력의 정점이었다. 현대사회의 대통령과 같은 권력의 수장들도 재직시절 동안에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과거 중국에서 황제의 권력은 오늘날의 그 어떤 자리보다도 막강한 여신과 같은 권능의 자리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밤의 역사를 실질적으로 만들고 지배하는 이는 여인들이다. 중국 역사를 보면 황제가 사는 궁궐 속의 여인들은 모두 황제의 소유물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속의 수많은 여인들 중 누군가가 황제의 간택을 받은 사람이 될 때 그녀의 운명은 땅과 하늘의 차이만큼 변화한다. 황제와의 잠자리에서 베갯머리 정치나 이불 속 협상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서 엄청난 부와 권력을 거머쥘 수 있음은 물론 나라의 향방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이 책에 등장하는 무미와 같은 여인은 열네 살에 보잘것없는 후궁전 무리의 하나에서 출발하여 가냘픈 여인의 몸으로 대담한 지략과 권모술수를 통한 끊임없는 노력을 거쳐 서른두 살에 드디어 황후의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는 자신의 절대 권력에 방해가 되는 첫째, 둘째 아들들을 죽여가면서 종국에는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등극하여 측천則天이라고까지 칭하게 된다. 이렇듯 이 책 안에는 밤의 중국사에서 벌어지는 온갖 기행과 타락, 암투와 배신의 광경이 넘쳐난다. 독자들은 중국 황실의 권모술수로 점철된 밤의 역사를 보고 놀랄 수도 있다. 그러나 천하를 호령한 만큼 침실에서도 역시 절대자로 군림하고 있는 황제들과 반대로 그들 위에 군림한 수많은 여인들의 면면을 보고나면 중국 역사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될 것이다. 궁녀 혹은 자신을 길러준 유모와 성관계를 맺은 황태자, 여동생을 탐한 황제, 한꺼번에 16명의 비빈과 함께 순장된 황제, 아버지의 여자를 취한 황제, 여든을 넘어서까지 남색을 즐긴 여황제……. 황태자들은 이미 사춘기에 접어들기도 전에 체위가 나타난 춘화나 조각상을 통해 황궁의 은밀한 장소에서 ‘개인교습’을 받았다. 또 유난히도 중국황실에는 성교를 통해 쾌락을 극대화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을 소설처럼 풀어놓은 방중서들이 많았던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잔혹한 쾌락 혹은 암투의 역사 도대체 이처럼 낯 뜨거운 쾌락의 역사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또, 수많은 여인들이 어떻게 황제를 품고자 노력을 했던 것일까? 중국은 하왕조 이후 천 년 가까이 정치적으로는 군주제를 바탕으로 유가사상이 보편화된 사회였다. 유가사상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즉 자신의 인격수양과 가족의 안위와 평안을 근간으로 삼는다. 가족을 떠받드는 요체는 효孝인데, 효의 시작은 바로 대 잇기를 통한 자손 번창이다. 더욱이 국가권력의 최고정점인 황실의 경우는 오죽했겠는가. 종족번영과 안녕을 위해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처럼 불거진 것이 바로 이 책에서 낱낱이 밝힌 중국황실의 치명적이면서도 잔혹한 쾌락 혹은 암투의 역사이다. 쾌락에 대한 집착은 결국 권력의 상실로 이어지게 된다는 역사적 진실 역시 쉽게 발견하고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은밀한 쾌락의 역사가 곧 거대한 변혁의 회오리를 몰고 오게 되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관통하는 불변의 법칙이다. 대제국 중국황실의 중심에서 쾌락에 빠진 황제 혹은 황후들은 대부분 내쫓김이나 죽임을 당하곤 한다. 아버지 혹은 어머니, 아들, 혹은 숙부라는 존재는 가장 경계해야 할 잠재적 적이며 질투와 배신은 황실에서 일상다반사였다. 또 황제와 잠자리를 하기 위해 노심초사 밤을 기다리는 비빈들, 황제의 총애를 받기 위해 벌어지는 후궁들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 아들을 낳으면 죽임을 당하는 황후의 아이러니한 운명, 권력을 놓치고 싶지 않은 과욕이 낳은 근친혼……. 황후는 수없이 간택되고 폐위되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중국 역사상 황후의 수는 황제의 숫자보다 훨씬 많다. 태어날 때부터 권력을 쥐고 나온 황제들과 달리, 후천적인 노력이나 상황에 의해 황후가 된 여인들의 분투기는 놀라움과 함께 애절함까지 보여준다. 물론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무색하게 몇십 년 동안 권력을 장악한 여황후도 있긴 하지만 그녀가 보여준 간계함과 퇴폐적 생활은 가히 명불허전이다. 황실의 은밀한 성 이야기는 권력의 속성은 물론이거니와 더 심층적으로 들어가면 인간의 내면적 본성이나 본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 황실의 성性 담론을 다룬 이 책의 저자 시앙쓰는 베이징 고궁박물관 연구원 겸 도서관 부관장이며 중국 최고의 황실 역사 전문가이다. 그는 황실관련 기록 속 편린으로 남아있는 성 관련 사료들을 토대로 무한한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 황실의 성을 자유로운 필치로 그려낸다. 독자들은 황실의 은밀한 스캔들 뒤에 감춰진 인간 본연의 욕망, 권력을 둘러싼 암투를 현재적 관점에서 곱씹을 때 행간에 숨은 뜻을 읽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보통 사람들과는 격리된 채 구중궁궐 한복판에서 벌어진 중국황실의 밤의 역사와 여인들의 투쟁사가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한 차원 높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