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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전의 검은 리더 오바마
박성래 | ㈜알에이치코리아 | 2010-01-0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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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전의 검은 리더 오바마
박성래 | ㈜알에이치코리아 | 2010-01-0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역전의 리더 검은 오바마>는 KBS의 베테랑 정치부 기자가 미국 대선 현장을 발로 뛰면서, 오바마를 밀착취재하고 조사하여 쓴 책이다. 기자 특유의 생동감있는 문체와 내용압축, 다큐멘터리적 구성이 웬만한 추리소설 못지않은 가독성을 불어넣고 있다.
이 책에는 흑인이라는 미국 사회 최대 약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삼아 성공한 오바마의 인생이야기와 함께 복잡한 미국 대선 관전 포인트가 소개되어 있고, 공화당 후보 매케인에 대한 남성적 매력도 담고 있다. 그리고 햇병아리 상원의원 시절의 오바마와 매케인 간 이메일 전쟁도 그대로 보여주어 미국 상류 사회의 고급한 블랙 유머와 해학을 만끽하게 한다. 2004년 7월 27일, 그해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존 케리 후보 출정식에서 흑인 영가 풍의 음악을 배경에 깔고 등장한 오바마가 행한 지원 연설은 지금도 명연설로 회자되고 있다. 그의 출세 제1막 1장은 바로 그 명연설에서 열렸던 것. 그 연설 내용도 청중들의 반응과 함께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히 실려 있다. 검은 오바마, 그의 인생 최대, 세계 최대의 역전 비결은 무엇인가 미국 사회에서 흑인, 그것도 ‘흑백혼혈’ 흑인은 흑인사회에서마저 ‘가짜 흑인’으로 낙인찍혀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미운오리새끼와도 같은 존재. 한 마디로 최악의 왕따 운명인 것이다. 오바마가 바로 그 운명을 타고 났다. 아프리카 케냐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흑백혼혈’의 검은 오바마. 청소년기에는 농구장에서 방황도 하고 말콤엑스 등의 흑인 혁명가를 동경도 하며 행로조차 잡지 못하던 그. 어른이 되어서는 배리 Barry라는 미국식 이름을 버리고 ‘버락 Barack’이라는 아프리카 이름을 굳이 고집하면서 흑인임을 내세운다. 이슬람교도인 케냐의 할아버지에게 얻은 미들네임 ‘후세인 Hussein’은 미국인들이 제일 미워하는 바로 그 이름이다. 어느 것 하나 움치고 뛸 수 없는 그 태생적, 환경적, 사회적 나락에서 몸을 솟구쳐 대학 때는 세계 법학계 최고 권위의 학생 잡지 <하버드 로 리뷰 Harvard Law Review> 편집장에 오르고 마침내 대통령 후보에까지 오른 그의 역전 비결은 무엇인가. 그를 키운 8할은 도대체 무엇인가. 누구나 오바마가 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이 책을 통해 오바마에게 배울 수는 있다. 오바마 리더십의 핵심 오바마는 참모들과 회의를 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물어 본다. “당신은 정말 조용하게 있네요.” 오바마는 회의 중에 말을 하지 않는 참모는 토론 진행에 뭔가 불만이 있거나 토론의 흐름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오바마는 자신의 주장을 야단스럽게 주장하는 참모보다는 반대 의견을 갖고 있으면서도 침묵을 지키는 참모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한다. 성격이 소심해서 혹은 이런 말을 하면 왠지 바보 취급을 받을 것 같아서 말을 참고 있는 참모들의 의견까지 모두 듣고 싶어한다. 조용한 반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오바마는 참모들의 업무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편이다. 참모들의 의견을 들을 때는 세심하지만 일을 맡긴 사람에게는 영역을 존중해 준다. 세심해야 할 때와 내버려 둘 때를 잘 구분하는 것이 오바마 리더십의 핵심인 것이다. 재기를 꿈꾸는 세상 모든 패배자의 진정한 멘토 하원의원에도 당선되지 못한 일개 유색인종 정치꼬마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단 한 번의 연설로 전 미국인을 사로잡으며 차기 대통령 후보로까지 조명받는 모습은 그 유명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만큼 대단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부정을 긍정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냉소적 차별과 편견을 따뜻한 배려와 이해로 바꿔나가는 오바마야말로 재기를 꿈꾸는 세상 모든 패배자의 진정한 멘토임에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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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옛사람에게 전쟁을 묻다
도현신 | 타임스퀘어 | 2012-05-1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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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옛사람에게 전쟁을 묻다
도현신 | 타임스퀘어 | 2012-05-1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전쟁의 포연 속에 감춰진 민중의 고통과 눈물”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였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쟁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삶의 풍경이다. 과연 옛사람들에게 전쟁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시대 민중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입었다. 그들은 전쟁을 대비하다가 목숨을 걸고 참전하고, 전쟁이 끝나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복구하는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 권력층, 군수산업체 관계자, 군수 상인들은 전쟁으로 혜택을 받는 존재였다. 이들이 벌인 전쟁은 언제나 민중의 이해와는 상관없었으나 그 고통은 백성의 몫이었다. 21세기 현대의 전쟁은 속전속결로 끝나지만, 전쟁의 포연 속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이처럼 전쟁은 수많은 재앙을 일으키며 고통을 초래하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완전히 없애거나 피할 수만은 없다. 자유를 위한 전쟁 역시 지금 이 시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왜 일어나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전쟁인 임진왜란은 일본이 갑자기 침공한 일방적인 전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당시 일본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100년 넘게 내전을 치르면서 과대할 정도로 팽창한 군사력을 적절한 수준으로 조정하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숨은 의도가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살아온 군인들이 싸움터에 나가지 않는다면, 범죄나 폭력을 일삼아 일본 본국의 치안이 불안해질 우려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공한 또 다른 이유에는 자신의 신하들에게 나눠줄 영지를 확보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일본의 최고 통치자 지위에 오른 사람으로서 부하들에게 상급으로 나눠줄 영지가 없으면 그들의 충성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조선 침공으로 영지를 확보하고, 전쟁으로 생기는 각종 전리품을 기대하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은 내부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임진왜란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을 조성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조선과 일본의 민중에게 엄청난 고통만 안겨주고 말았다. “전쟁이 휩쓸고 간 뒷자리, 변화하는 사회풍조” 조선시대에 16세 이상의 성인 남자는 60세까지 군역의 의무를 다해야 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60세까지라면 거의 평생을 군역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군역의 부담 때문에 다른 사람의 군역을 대신하는 ‘아르바이트 군인’인 대립 제도나, 일정량의 군포를 납부하고 그해의 군역을 면제받는 방군수포제도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수탈당하던 조선시대 백성은 고향을 떠나 깊은 산으로 들어가 중이 되거나, 자해를 해서라도 군역을 면제받으려는 극한의 선택을 하기도 했다. 정약용이 쓴 〈애절양〉이라는 시를 보면 자식을 낳아 무거운 군포 부담으로 고통 받던 사람이 신세를 한탄하며 자신의 성기를 식칼로 절단하는 끔찍한 일을 벌이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벌어지자 많은 조선 백성이 포로가 되어 일본과 청나라로 끌려갔다. 전쟁은 특히 여성에게 끔찍한 고통과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적군의 성노리개가 되어 팔리기도 하고, 노예로 팔린 여성들은 온갖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청나라에서 몸값을 지불하고 조선으로 돌아온 ‘환향녀’는 잘못된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에 내몰려 정절을 지키지 못한 음란한 여인들로 규정되어, 따뜻한 보살핌을 받기는커녕 ‘화냥녀’ 또는 ‘화냥년’이라는 사회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밖에도 전쟁이 휩쓸고 간 뒷자리에는 잘못된 폐단이 엄청나게 많이 생겼다. “전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한국인은 1950년 한국전쟁을 겪은 이후로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동안 몇몇 기업은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했고, 우리 기술로 만든 핸드폰, 반도체, LNG선 등이 세계로 수출되는 현실을 보면 이제 전쟁의 우려는 사라진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겉보기일 뿐이다. 한국은 아직도 기초 기술 분야에서는 약소국이며, 한국이 자랑하는 핸드폰과 반도체도 그 속을 뜯어보면 핵심 부품과 원천기술은 전부 외국의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이미 무한경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국가적 기술혁신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지만, 이윤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생리 때문에 기술의 진보가 군수산업과 깊이 결합하는 폐단도 발생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전쟁과 이라크전쟁은 세계 패권국으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막대한 석유자원을 확보하려는 미국과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한 전쟁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세계는 지금 보이지 않는 전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세계의 식량 사정은 계속 불안해지고 있는데, 국제 곡물 시장을 소수의 대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식량 부족이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한다면, 이런 기업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분명하다. 식량이 곧 핵폭탄 이상의 무기가 되어 우리의 일상생활을 위협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곧 다가올 식량전쟁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위정자들에게 ‘식량주권’이라는 개념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바라보며 어떻게 이 위험을 타개해 나갈 것인지 옛사람들에게 교훈을 얻어야 할 때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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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왜 우리는 역사에 빠져드는가
이수광 | 소울메이트 | 2012-03-1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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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왜 우리는 역사에 빠져드는가
이수광 | 소울메이트 | 2012-03-1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오늘, 역사를 읽는 것은 미래의 비전을 위해서다!
한국인들처럼 역사를 좋아하고, 역사로 이루어진 드라마나 문학작품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팩션형 역사서의 대가인 저자는 그간 대중역사서와 역사소설을 쓰면서 나름대로 ‘역사란 무엇이며 왜 읽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어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저자는 20여 년 전부터 삼국시대부터 발해, 고려, 그리고 조선의 뒷골목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면서 역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나름대로 주관을 갖고 역사를 살피게 되었다. 저자는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오늘, 역사를 읽는 것은 미래의 비전을 위해서라고 강조한다. 단순한 재미를 위해서 역사를 읽는 게 아니라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역사를 읽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읽거나 쓰는 것이 즐겁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역사에 빠져드는 것이다.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역사를 읽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역사를 해석하는 자기만의 눈, 즉 통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역사는 뜻밖에 왜곡되고, 편향되고, 기술자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기록된다. 우리는 진실하지 않은 역사, 위선의 역사, 왜곡된 역사를 종종 읽게 된다. 권력자들은 불리한 기록을 은폐하려 했고, 진실을 남기려면 많은 희생이 따랐다. 이처럼 역사는 여러 각도에서 조명되고 해석된다. 서술자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조명되고,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그러니 역사를 서술할 때는 자기만의 통찰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러한 통찰이 더해질 때 역사를 읽는 재미는 더욱 배가된다. 그간 모르던 역사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 기존의 평가에 대한 나만의 시각과 자기 나름대로의 새로운 평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학문적인 접근보다는 역사에 대한 저자의 분명한 생각을 담은 대중역사서인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역사를 들여다보는 관찰자의 한계에서 벗어나 역사를 보는 자기만의 눈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어제와 오늘을 알면 내일의 길이 보인다! 이 책은 1장 역사란 무엇인가, 2장 역사는 진실인가, 3장 역사는 진보하는가, 4장 개인의 역사, 이렇게 크게 나누어 저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서술했다. 1장의 질문은 '역사란 무엇인가'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본 일이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말하고는 한다. 그런데도 역사를 읽고, 논하는 것은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1장에서는 역사의 기원부터 역사의 이상향, 그리고 혁명가들에 대해 논한다. 2장의 질문은 '역사는 진실인가'이다. 역사는 뜻밖에 왜곡되고, 편향되고, 기술자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기록된다. 우리는 진실하지 않은 역사, 위선의 역사, 왜곡된 역사를 종종 읽게 된다. 진실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따른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기록을 남기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진실은 아무리 감추고 은폐하려 해도 감추어지지 않고, 언로를 통제하면 수많은 유언비어가 난무하게 된다. 2장에서는 승자가 쓴 역사, 위서라 불리는 역사, 편향된 역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3장의 질문은 '역사는 진보하는가'이다. 문명의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면 확실히 역사는 진보한 측면이 있다. 왕이 다스리던 군주제 봉건시대에서 국민이 지도자를 선출하는 민주주의 시대로 발전했다. 그러나 여전히 헤게모니 쟁탈전이 치열하다. 이상적인 사회로 진보했는지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3장에서는 역사의 희생자, 투사자, 목격자, 추동자, 면책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마지막 4장의 질문은 '개인의 역사도 역사인가'이다. 개인의 역사는 하나의 물방울에 지나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역사로 기록될 수 있다는 점을 서술했다. 개인의 일기, 서간, 그림은 개인적인 사건에 지나지 않은 것 같지만 당대의 사회사를 살필 수 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통해서 전쟁 상황을 살필 수 있고 김려의 『감담일기』를 통해 양반들이 유배 가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김홍도의 풍속도들을 통해서는 당시 조선 사람들의 생활을 살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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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우리가 꼭 알아야할 역사속의 인물 에피소드 100
남벽수 편집부 | 남벽수 | 2012-12-1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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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우리가 꼭 알아야할 역사속의 인물 에피소드 100
남벽수 편집부 | 남벽수 | 2012-12-1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셰익스피어는 절뚝발이였고 호머와 밀턴은 눈먼 시인들이었으며, 베토벤은 심한 청각장애자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곱사등이였으며, 넬슨과 나폴레옹은 키가 작기로 소문난 사람들이었다. 또 보물섬을 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병약했는데, 심한 각혈과 천식으로 늘 고생했다.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 꼭 잘난 인물들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있어 핸디캡들이 있었지만 그 핸디캡을 이겨내고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낸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배울 점이 많은 것이다. 아무런 고관도 없이 얻어지는 업적이란 없다. 지금 고난에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다면 역사 속의 이물들이 남긴 교훈들을 가슴에 담자. 불후의 명작 신곡을 쓴 단테는 햇볕에 그을린 갈색 피부에 독수리를 연상케 하는 휘어진 코, 날카로운 턱, 작은 키를 가진 추남이었다. 게다가 걸을 때는 새우등처럼 등을 잔뜩 구부리고 다녀 궁상맞기 짝이 없었다. 그에 못지않는 추남 중의 추남은 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미켈란젤로였는데 그가 추남이 되어버린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깨져버린 코라고 할 수 있다. 젊었을 때 동료 학생과 싸움을 하는 도중 대리석으로 얻어맞은 코가 깨져버린 후 얼굴이 보기 싫게 되었고 그 후로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대신 미켈 란젤로는 추남이었던 단테의 시를 무척 좋아했으며 그의 열렬한 독자였다. 셰익스피어는 절뚝발이였고 호머와 밀턴은 눈먼 시인들이었으며, 베토벤은 심한 청각장애자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곱사등이였으며, 넬슨과 나폴레옹은 키가 작기로 소문난 사람들이었다. 또 보물섬을 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병약했는데, 심한 각혈과 천식으로 늘 고생했다.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 꼭 잘난 인물들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있어 핸디캡들이 있었지만 그 핸디캡을 이겨내고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낸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배울 점이 많은 것이다. 아무런 고관도 없이 얻어지는 업적이란 없다. 지금 고난에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다면 역사 속의 이물들이 남긴 교훈들을 가슴에 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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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곽의 역사
홍성철 | 페이퍼로드 | 2013-04-1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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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곽의 역사
홍성철 | 페이퍼로드 | 2013-04-1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일제가 들여오고 우리가 번성시킨 환락의 거리
우리나라 집창촌의 역사는 한때 아시아 최대의 매춘거리로 유명세를 탔던 부산 완월동 집창촌의 전신인 아미산하 유곽부터 시작된다. 개항지를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긴 성매매 업소들이 성병 예방과 풍기문란 예방이라는 명목 하에 실시된 일본의 정책을 빌미로 점차 한 장소에 집중되어 발전하게 되었는데 그 첫 타자가 바로 아미산하 유곽이었다는 것이다. 한때 일본인만을 위해 운영되었던 이들 유곽은 철도의 발달과 함께 점차 조선 전국에 뿌리를 내리며 식민지 착취로 인한 빈곤에 시달리던 여성들과 자본주의적 성매매에 눈뜬 남성들을 빨아들였다. 저자는 성매매의 번성이 유교적 전통을 갖고 있는 조선 사회에 커다란 문화적 충격을 주며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고 말한다. 애인의 돈 때문에 팔려간 여자들의 사연과 포주에게 학대당하는 성매매 여성들, 등굣길에 있는 집창촌으로 인한 아동 교육 문제, 곤궁한 사회에서 비정상적인 호황을 누리는 유곽에 대한 개탄 등이 게재되어 있는 당시의 신문은 그 주장의 근거가 된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인정한 공창과 불법업체인 사창은 성구매 남성과 성판매 여성 수 증가와 함께 날로 번성해가며 사회문화의 하나로 정착하기에 이른다. 일본에서 유입된 집창촌 문화가 한국인들에 의해 환락의 날개를 펼친 것이다. 경제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국가주도산업 저자는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공창제가 폐지된 이후를 ‘사창전국시대’라 명명했다. 일본 유곽이 있었던 자리들이 재빨리 사창가로 전환되면서 일제시대에 집창촌을 경험했던 많은 사람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집창촌을 이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50년에 발발한 6.25도 성매매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오히려 전쟁 때문에 더더욱 곤궁에 빠진 여성들이 생계를 위해 성 판매를 했고, 현실을 잊고 싶은 남성들은 성 구매에 열을 올렸다. 집창촌의 토대가 마련된 마당에 경제발전에 나라의 미래를 건 제3공화국이 들어서자 상황은 더 우스꽝스럽게 변모해갔다. 겉으로는 ‘윤락행위 방지법’을 만들어 단속하는 척 하고 국민의 여론을 호도하면서 뒤로는 집창촌을 ‘특정지역’이라는 단어로 묶어 성매매를 묵인한 것이다. 정부가 이렇게 ‘공창 아닌 공창’을 운영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앞서 호황을 누렸던 일본인들이 성매매 관광을 와 뿌리고 가는 돈이 곧바로 국가의 외화획득 호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본 기생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며 흘러들어오는 외환으로 나라 살림을 챙겨나갔다. 일본뿐만이 아니다. 미군 기지촌의 활성화 또한 ‘최대의 우방’인 미국과의 동맹의 상징이었기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는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에게 성병예방과 반공사상, 영어 등을 교육하며 기지촌 거대화의 기초를 다지기도 했다. 저자는 이것이 사창이 만연한 시절 미군 기지촌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던 군사정권의 미봉책이었음을 드러낸다. 물론 이 시기의 경제성장이 기생관광 외화만으로 충당된 것은 아니다. 국가 주도 산업화와 함께 수출이 증대한 것이 ‘한강의 기적’ 의 절대적인 이유였다. 이 시기 모두가 꿈꾸는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전국민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하지만 끊임없는 생산성 증대 압력과 경제성장 압박은 나라의 미래와 함께 가정 생계를 책임지는 남성 가장들에게 커다란 스트레스가 될 뿐이었다. 별다른 놀이 문화가 없던 살벌한 나날들, 가장들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숨막히는 권력의 압제를 벗어나는 방법으로 성매매를 택했다. 사실 이것은 독재 정부가 ‘특정지역’을 만들면서 생겨난 암묵적 효과일 수 있다. ‘조국근대화’라는 명목으로 경제성장의 음지이자 파생상품으로 커간 집창촌은 80년 이후의 5공화국 시절을 맞아 쿠데타를 가리려는 군부정권의 정책 아래 국민의 3S 서커스(Screen, Sports, Sex) 중 하나로 변모한다. 특히 올림픽 개최와 더불어 규제가 완화되면서 산업형 성매매와 음성적 매매춘이 등장해 성매매는 그 등장 이래 최대의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비인간적인 포주의 학대와 잇단 집창촌 화재 등으로 점철된 윤락가의 역사는 결국 2004년 ‘성매매특별법’을 불러왔고, 법령의 강력한 시행에 힘입어 집창촌은 논란만 남긴 채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 대한민국 성매매, 지지와 반대를 넘어서 성매매특별법 제정으로 집창촌의 역사가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저자는 마지막 단락에서 ‘집창촌의 현재와 미래(2005~)’라는 제목으로 ‘오픈 엔디드(Open-ended)’방식을 취한다. 성매매나 집창촌 문제는 늘 현재진행형이며 끝나지 않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성매매특별법의 강력한 시행이 겉으로는 집창촌 해체라는 성과를 보이는 듯 했으나 실상 성매매가 음지로 숨어들어가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저자의 말은 안마시술소, 룸살롱 등, 편법형 성매매 집결지의 수적 증가가 증명해준다. 사실 성매매특별법에 의한 집창촌 해체 또한 공간 재배치를 위한 숨고르기에 지나지 않는다. 공간의 존폐여부를 떠나 성매매가 없어지지 않는 한 성매매 업소는 물론 집창촌 역시 존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성매매 완전근절’이라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는 오히려 성매매를 어느 정도 묵인하겠다는 국가의 속내가 아니냐는 저자의 따끔한 한마디는 속 시원하기까지 하다.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성매매 선악 논란이라는 소모적 싸움에 앞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정으로 성매매 근절을 추구한다면 성매매 찬반 토론을 벌이기 전에 우선 여성들의 성매매 업소 유입을 원천적으로 막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터무니없이 낮은 여성 사무원 월급과 짧은 근속년수, 그나마도 없는 일자리 등, 갈수록 심각해지는 여성의 빈곤화는 성매매 유입 여성의 증가를 불러오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 고용에 대한 정부의 빈약한 지원은 결과적으로 성매매 촉발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향락문화의 번성과 성 판매, 성 구매자의 도덕성을 탓하기 전에 건전한 노동의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무게감을 갖는 이유다. 2007년 9월 23일은 성매매특별법 제정 3주년이 되는 날이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성업 중이던 집창촌은 이제 찬바람만 분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성매매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성매매특별법 3주년, 이제 법 시행 효과 여부와 그 긍정, 부정적 영향들을 점검할 시기가 되었다. 그러나 성매매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와 함께 집창촌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비가시화된 집창촌을 가시화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집창촌이 우리 삶의 한 터전이자 문화의 소비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역사를 알아나가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의무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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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대인들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는가
박기현 | 소울메이트 | 2012-07-14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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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대인들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는가
박기현 | 소울메이트 | 2012-07-14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무엇이 유대인들을 특별한 민족으로 만들었는가?
유대인들은 왜 그렇게도 특별한가? 유태인들은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68억 인류 가운데 가장 생명력이 강한 민족이 유대인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나라 없이 수천 년간 떠돌며 갖은 핍박과 환란 속에서도 신앙과 전통을 지키며 오늘에 이르렀다. 도무지 낡고 낡아 쓸데라고는 없을 것 같은 전통과 조상의 율법, 여호와의 신앙을 붙잡고 지금도 그것을 목숨처럼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이다. 그것이야말로 유대인들의 찬란한 오늘을 만든 성공 비결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유대인의 한 측면만 보고 배우자고 말하거나 혹은 그들의 외견적 모습만 보고 틀렸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격이다. 유대인에 대한 세간의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 유대인의 모든 것을 담은 보기 드문 책이다. 우리는 경제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미숙한 상태다. 유대인이 열심히 일해 안정감을 갖고 살아가는 데 비해 우리는 열심히 일하지만 여전히 살기 위한 몸부림치는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헛헛한 속을 채워가려는 노력 없이 선진국 진입을 외치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세우는 헛수고가 될 것이다. 물질이 앞서 가는 이 혼란스런 세상에서 많은 독자들이 유대인의 지혜를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전 세계의 부와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유대인들 특유의 인생관과 돈에 대한 철학, 그들의 기부문화 등 우리가 배워야 할 많은 교훈과 메시지를 담고 있다. 유대인의 신경일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오늘날 전 세계의 유대인 인구는 1천400만 명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그 숫자가 미미하다. 그런데도 세계 노벨상 수상자의 30%를 장악하고, <포브스> 집계 세계 경제의 상위 400위 억만장자 가운데 60명이 유대인이라는 놀라운 기적을 일구어냈다. 인구상으로는 이렇게 작은 숫자의 유대인들이 68억 명 지구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게다가 유대인들에게는 지켜야 할 토지도, 지켜줄 군대도 없었다. 2천 년 간이나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지켜야 할 것도 지킬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전통과 문화를 지켜왔다. 학교 같은 교육기관도 없이 성경을 통해 자녀들에게 자신들이 유대인임을 가르쳐왔다. 그렇게 열악하고 부족한 현실 속에서도 그들은 굴하지 않고 좌절과 위기를 극복하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신행일치’와 ‘신경일치’라는 말로 유대인들의 언행을 정리할 수 있다. 신행일치는 믿음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뜻이고, 신경일치라는 말은 곧 믿음과 경제가 일치한다는 뜻이다. 유대인에게 있어 신앙과 경제관념은 늘 하나였고, 그 양쪽을 철저히 관리해온 덕에 오늘날의 부를 이뤄낸 것이다. 이 책은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유대인들에게 있어 여호와 신이 어떤 의미인지 유대인들의 신앙에 대해 다루고 있다. 2장에서는 솔직함과 도덕성으로 위기를 극복한 요셉의 이야기와 유대인들이 솔직함과 도덕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러주고 있다. 3장에서는 기부와 나눔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을 알아본다. 4장에서는 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어찌 보면 유별나게 돈에 집작하는 유대인들에 대해 다룬다. 5장에서는 유대인들이 돈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또 돈 관리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을 알아본다. 6장에서는 열정과 집념으로 인생역전을 한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유대인들의 열정과 집념에 대한 인식과 생각을 설명한다. 7장에서는 유대인들의 지혜와 분별을 다루고, 지혜의 상징인 솔로몬 왕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이 어떠한지 이야기한다. 8장에서는 유대인의 치밀한 상술에 대해 알아보고, 그를 통해 어떻게 성공하는지도 다룬다. 9장에서는 유대인들의 특별한 공동체 교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0장에서는 유대인들의 가정교육에 대해 다루고 있다. 11장에서는 유대인들이 인생과 생존의 지혜를 얻는 탈무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12장에서는 인내와 절제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을 알아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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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럽 의식의 위기
폴 아자르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09-10-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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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럽 의식의 위기
폴 아자르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09-10-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유럽의 정신적인 지주라고 볼 수 있는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 걸친 지적, 사상적 흐름을 개관한 이 책은 출판 직후 프랑스에서 선풍적인 호응을 얻었다. 폴 아자르의 참신한 관점이 우선 세인의 주목을 받을 만한 것이었지만, 방대한 작업을 담담하게 헤쳐나가는 그의 태도 또한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방대한 문학적 지식과 비교 문화적 지식을 바탕으로 유럽을 총체적으로 관찰,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은 1968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을 저본으로 번역한 책. 근대 유럽의 정신적 지주라고 볼 수 있는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 걸친 지적, 사상적 흐름을 개관한 책이다. 출판 직후 프랑스에서 선풍적인 호응을 얻은 책 중의 하나였다. 그의 참신한 관점이 우선 세인의 주목을 받을 만한 것이었지만, 방대한 작업을 담담하게 헤쳐나가는 그의 태도 또한 새로운 것이었다. 그는 프랑스의 역사에서 많은 것을 빌려오면서도 유럽이라는 큰 덩어리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은 채 이 책을 이끌어갔다. 그는 방대한 자료의 그 시대를, 그래서 아직 아무도 감히 탐험 길에 오르지 않은 밀림을 용케도 헤쳐나갔으며, 그 결과를 한 장의 지도로 작성해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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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비에게 묻고 조조에게 배우다
한석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08-30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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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비에게 묻고 조조에게 배우다
한석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08-30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알면 알수록 오묘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중국을
《삼국지》라는 프레임으로 들여다보고 싶었다. 더없이 찬란했으나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 영웅들에게 새털 같은 삶의 의미를 묻고 싶었다. KBS의 인기 아나운서 한석준은 《삼국지》를 40번 이상 읽었을 정도로 마니아다. 그는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힘을 인문학에서 찾으며,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삼국지》라고 본다. 《삼국지》의 역사적 흔적을 찾아다니며, 아직도 그들 문화와 정신 속에 뿌리박혀 있는 영웅들에 대한 이미지와 관습을 들여다보는 것은, 흥미로운 타임머신 여행은 물론 곧 왜 우리가 그토록 《삼국지》를 읽고 열광하는지에 대한 해답도 될 것이다. 아나운서 한석준은 왜 하필 중국에 갔을까? 큰 키에 잘생긴 얼굴, 무심코 지나치다가도 누구나 한 번쯤 뒤돌아보게 되는 도시적 매력의 소유자 한석준은 KBS를 대표하는 간판 아나운서이다. 메인 MC로서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을 중계 방송하면서, 직접 현장에 가서 지켜본 중국과 중국인의 엄청난 성장에 큰 충격을 받았다. 중국이란 나라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인문학적 깊이가 있기에 다른 주변 민족들을 모두 흡수하여 동화시킬 만큼 강한 것일까. 100년 이상을 세계 정치의 변두리에 머물러 있다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지 20여 년 만에 다시 세계의 중심 국가로 올라선 그 힘의 저변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눈부신 경제 발전은 물론 무엇이 중국인들을 이토록 단숨에 선진국 국민으로 탈바꿈시킨 것일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용감하게 1년간 KBS에 무급 휴직계를 던지고, 배낭 하나 덜렁 맨 채 아이패드 들고 중국 최고의 대학 중 하나인 칭화 대학에서 연수를 시작했다. 늘 단정해야 하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에서 벗어난 그는 다이어트의 강박증에서도 벗어나 욕심껏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수염 기른 맨 얼굴로 자유롭게 중국 땅을 오가며 수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튼튼한 두 다리로 대도시부터 아주 작은 현까지 기차와 버스에 의지해 샅샅이 ‘무언가’를 찾아다녔다. 마니아 한석준이 찾아다닌 그 ‘무언가’가 뭘까?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한 권짜리 간략한 책으로 처음 접한 이후 《삼국지》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사이의 머리싸움에 무릎을 쳐가며 읽었다. 가장 좋아하는 이문열 버전을 비롯해 만화로 된 것까지 모두 찾아 마흔 번쯤 완독하면서, 읽을 때마다 삼국의 역사와 정치적 의미, 역사 속 인물들, 각각의 이해관계 등을 곱씹어 생각했다. 왜 그 시대의 인물들이 그 땅에 집착했고, 그 땅을 얻기 위해 무엇을 희생해 가며 싸웠는지, 왜 때로는 적이 되어 싸우고 때로는 아군이 되어 뭉칠 수밖에 없었는지, 왜 누군가는 영웅이 되고 누군가는 이름 없는 범부가 되어 쓸쓸히 죽어 가야 했는지. 중국에 와서 《삼국지》를 다시 읽다보니 더 많은 것이 궁금해졌고, 이참에 그 빛나던 역사적 현장의 흔적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였다. 한편으론 열심히 중국어 공부를 하면서, 또 한편으론 인물 하나하나가 어디서 태어나고 어디서 죽어갔는지, 또 책 속의 주요 사건이 일어나거나 영웅들이 맞붙은 격전지는 어디인지, 그런 사건들은 왜 꼭 그 장소에서 일어나야 했는지 차근차근 찾아보며 지도에 표시를 해나갔다. 100년에 걸친 시간을 배경으로 그 넓은 땅덩어리에서 벌어진 《삼국지》이니, 당연하지만 가봐야 할 장소는 너무나 많은 데 비해 그에게 주어진 1년은 너무나 짧았다. 게다가 남아 있는 지명이 정확하지 않아서 아무리 검색을 해도 그 현장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으며, 어렵게 찾아갔지만 남아 있는 유적이라곤 하나도 없거나 너무 허접하여 실망만 하고 돌아온 날도 많았다. 결국 이렇게 아무것도 남지 않고 한 줌 먼지로 사라질 것을,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나 허망하기도 했다. 왜 우리는《삼국지》에 열광하는가? 약 1800년 전에 일어난 먼 옛날의 남의 나라 이야기임에도 불구, 《삼국지》는 남녀노소 모두가 즐겨 읽는 책이고, 황석영, 이문열 등 내로라하는 유명 문인들이 필생에 한 번 완역해 보고 싶어한 위대한 문학작품이며, 영화, 만화, 게임, 드라마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가장 많이 애용하는 소재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 이유가 뭘까? 읽을 때마다 그 사람의 나이와 처지에 따라 다르게 읽히고 해석된다는 고전 본연의 힘 외에 한 번 읽으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 자체가 갖는 흥미가 대단하며, 태양처럼 등장했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수많은 영웅호걸의 삶, 그들과 함께 끈질기게 목숨을 이어나가는 민초들의 생활상, 그렇게 사람은 사라져도 도도히 흐르는 역사 속에서 이어지는 변하지 않는 순리 등, 수많은 지혜와 교훈이 담긴 인생 극장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 《유비에게 묻고 조조에게 배우다》에서는 미처 자신의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거나 나라를 위한 비전이 없거나 인재를 잘 활용하지 못한 여러 영웅들의 승리와 몰락,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잘 적용되는 멋진 사례들, 옛 도읍지를 만날 때마다 떠오르는 역사 속의 에피소드들이 자유롭게 어우러지면서, 《삼국지》를 마흔 번 읽은 한석준 아나운서 특유의 호기심과 감성들이 펼쳐진다. 특히 그가 열심히 발품을 팔아준 덕분에, 지명이나 여전히 중국인들의 생활 곳곳에 남아 있는 역사 속 《삼국지》의 흔적들, 중국인들이 상상하는 영웅들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동상, 사당, 조각상, 유적 등을 사진으로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삼국지》의 프레임으로 들여다본 중국이라는 나라는? 누구보다도 긴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중국, 그러나 긴 시간 동안 문명과 인권이 취약한 사회주의 국가로 국제사회에서 푸대접을 받다가, 눈부신 초고속 경제성장과 함께 세상을 이끌어 가는 강대국으로 당당히 일어선 중국, 그 땅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도시 베이징, 그중에서도 최고의 대학 중 하나라는 칭화 대학교에서 연수를 받은 한석준의 레이다 망에 걸린 중국은 어떤 나라일까?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당나라로 입성한 듯 옛 건물의 정취를 그대로 살려 놓은 시안(장안), 뤄양(낙양)에서 시안까지 헌제가 갔던 그 길을 달리는 고속버스에서 생긴 오줌 사건, 새치기를 밥 먹듯이 하는 중국인들이 마오쩌둥의 생가 앞에선 기다랗게 줄을 서고,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그 뒤안길에서 먹을 것을 얻기 위해 개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노숙자 등, 《삼국지》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동안에도 한석준은 다양한 중국을 경험했다. 또한 미국의 카네기와 나란한 경지에 올라 존경받는 포스코의 박태준 회장, 중국 프로축구 팀인 광저우 헝다를 이끌고 있는 리더십 강한 이장수 감독, 사막에 10억 그루의 나무심기 운동을 벌이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있는 미래숲의 기획자 권병현 전 주중대사, 그리고 현지에서 만나 음식을 나눠먹고 우정을 나눈 한국과 중국의 멋진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책《유비에게 묻고 조조에게 배우다》에서는 여행기로서의 재미 또한 톡톡히 맛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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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
유시민, 진중권, 홍세화 | 책보세 | 2011-04-2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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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
유시민, 진중권, 홍세화 | 책보세 | 2011-04-2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부끄러운 바보’들이 ‘살아서’ 바치는 통한의 헌사
슬픔이 벼락처럼 내리치고 산처럼 덮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은 참사람 노무현! 지난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 각계각층에서 추모의 물결이 전국을 휩쓸었다. 이 책은 서거 이후 <경향신문> <민중의 소리>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한겨레> 등의 일간지 및 월간 《말》, 그리고 각종 블로그에 발표된 글들 가운데 고인의 진면목을 밝히고 뜻을 잘 드러낸 글을 추려 모아 편집한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추모집’이다. 박노해 시인의 <우리는 ‘바보’와 사랑을 했네>를 서시로 시작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어버이날을 맞이해 국민들에게 보내는 편지, 고인과 늘 함께했던 청와대 참모진들의 애석한 마음을 읊은 시와 추모사 그리고 각계 전문가들이 고인의 뜻을 어떻게 성찰하고 실천해야 하는지를 오롯이 전달하는 글들로 꾸몄다. 또 고인과 인연을 맺었던 분들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탈하면서도 인간적 면을 느낄 수 있고, 《고시계》에 기고한 사법고시 합격 수기를 통해서는 권양숙 여사와 만나 결혼한 일화 등 청년 시절 고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참고로 이 책에 실린 고 노무현 대통령의 글은 유족 측의 허락을 받고 게재했음을 아울러 밝힙니다.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유적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지당한 말이다. 어디 문화유산뿐이겠는가. 음악도 아는 만큼 들리고, 하늘의 별도 아는 만큼 헤아리지 않겠는가. 하물며 사람 사는 세상이야 말해 무엇 할 것인가. 빈민의 삶을 알 리 없는 유럽의 어느 왕비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했다는데, 엠비 정권의 기획재정부 장관 윤 머시기가 그 왕비의 말을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영리병원 설립 관련 국회 대정부 질문 자리에서) 기막히게 패러디하여 “(병원비가) 비싸면 환자가 안 가면 될 것 아니냐 … 왜 그렇게 걱정이 많으냐?”는 명언을 남기셨단다. 그래서 이 양반 ‘성분’을 뒤져보니 서울대 나와서 미국 유학을 하고 금융권 노른자위를 두루 섭렵하시었으며, 재산도 돈 구애받지 않을 정도(21억 얼마)라고 자진 신고하셨다. 특정인을 비난하려고 윤 머시기를 들먹인 게 아니라, 대통령을 비롯하여 이런 ‘고귀하신’ 족속들이 엠비 정권을 도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이 ‘평민 떨거지’들의 삶을 알 리 있으며,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에게 구현된 사회적?역사적 가치를 알 리 있겠는가 하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아니, 윤 머시기의 입놀림으로 보건대 알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니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도 바로 그런 심보와 정신머리를 가진 패거리의 무식하고 잔인한 폭력성이 빚은 비극이다. 웬 생뚱맞은 얘기냐고 할 법한데, 이 책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아니, 이미 이번 서거정국을 지켜보면서 뼈에 사무치도록 깨달았을 것이다. 노무현은 순전히 일관된 소신으로 스스로 쌓아올린 정치적 자산만으로 대통령이 된 한국현대사 최초의 인물이다. 다시 말해 유구하게 이어온 정치판의 협잡이나 간계가 아닌 순전히 국민이 ‘감동’으로 뽑은 최초의 ‘국민 대통령’이다. 더구나 그 자신의 ‘성분’도 ‘그저 그런 평민’이었다. 하필 이런 ‘비천한’ 신분의 위험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 고귀한 분들이 얼마나 가당찮아 하고 이를 갈았을지는 불문가지다. 그러나 그들도 ‘대한민국 대통령’의 서슬이 얼마나 퍼런지 아는지라 처음에는 납작 엎드린 채 ‘저걸 어떻게 하수인으로 만들어 부려먹나?’ 짱구를 굴리고 있었겠다. 그런데 웬걸? 민주주의 흉내만 내던 전임자들과는 달리 생 촌뜨기가 진짜 민주주의를 하려고 설쳐대면서, 심기를 건드리고 밥그릇을 축내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분들, 폼이고 뭐고 잡을 새도 없이 떼거리로 달려들어 노무현을 물어뜯었다, 내 밥그릇 건들지 말라고. 노무현은 쓰러질듯 하면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반격을 가했다. 5년 내내 그 짓이 되풀이되었다. 그분들, ‘지긋지긋한’ 5년을 보내고 마침내 ‘청계천 신화’를 포장하여 자신들의 대리인을 대통령으로 세우는 데 성공하셨다. 근데 이건 뭐야? 자기들 대리인은 ‘촛불’에 데이면서 욕이나 직사하게 먹고 있는데, 그 촌뜨기는 퇴임한 후에 외려 인기가 올라 ‘노짱’을 구가하는 게 아닌가. 이런 환장할 노릇이 있나. 그래서 이분들, 사냥개들 총동원령을 내리고 현미경과 저인망을 기본 장비로 삼아 일사분란하게 ‘노무현 사냥’에 나섰다. 그 촌뜨기를 파렴치범으로 몰아 포획한 후에 전시해놓고 자신들의 탐욕을 숨기고 죄악을 덮으려 하신 그 기막힌 작전은 성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분들, 노무현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인간이 아닌 작자들 눈에 어디 인간이 보일 리 있겠는가.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은 퇴임 15개월 후에 이렇게 살해되었다. 그래서 슬픔이 온 국민의 가슴에 강으로 흐른 것이다. 절망이 바다처럼 일렁이고 죄스러움이 산처럼 내리누른 것이다. 이 책은 ‘노짱’ 살해에 관한 증언이고, 그에 관한 새로운 발견이고, 속죄의 추도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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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사도라 던컨
이사도라 던컨 | 경당 | 2009-11-1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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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사도라 던컨
이사도라 던컨 | 경당 | 2009-11-1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시대를 초월한 자유의 상징 이사도라
이사도라는 죽은 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세인의 관심거리로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무용가이다. 그녀는 현대무용을 창조적인 무용으로 탈바꿈시킨 선구자이며, 여성의 지위향상을 부르짖었고, 기존의 모든 고정관념을 스스로 거부하며 살아온 반항아였지만 그 보다는 당대의 유명한 예술가들과의 염분으로 더 유명해졌다. 그 시대 발레로 대표되는 고정된 춤사위를 거부하고 발레슈즈와 의상을 벗어던지고 맨발에 그리스 튜닉을 두르고 자유롭게 춤을 추었던 그녀는 온 유럽과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이런 유명세와 함께 여러 예술가들과의 교제도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날수록 그녀의 이런 남성 편력보다는 그녀가 이루어낸 무용과 삶의 자유로움에 사람들은 더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이사도라는 유럽에서 유명해졌을 무렵 모든 것을 떨치고 그리스로 춤을 공부하기 위해 떠났다. 또 자신의 분신이라 생각한 무용학교를 위해 모든 재산을 쏟아부었고 오로지 자신의 학교를 유지하기 위해 춤을 추었다. 전쟁중에는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한 프랑스의 국가 에 맞춰 춤추며 순회공연을 했고 전쟁에 미온적인 자신의 조국 미국을 비난하고 다녔다. 1921년 무상으로 무용학교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러시아의 제의를 받고 그녀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러시아로 떠났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우리가 흥밋거리로 이야기하는 그녀의 남성편력을 위하여 예술가만 찾아다닌 여자와는 다른 여자였다. 또한 그녀는 세 아이를 낳으면서도 결혼제도를 부정하고, 여성이 결혼이란 제도 속에 묶여 한평생을 보내야 하는 현실에 반대했고, 자신의 춤과 연인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항상 자신의 춤을 선택하여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세워나갔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이 옳다고 믿고 따르는 것에 모든 것을 맡겼던 이사도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때론 가난에 시달리면서, 또는 세인의 비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밀고 나갔다. 그녀는 자유를 춤춘 것이 아니라 자유 그 자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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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
김종대 | 시루 | 2012-05-0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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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
김종대 | 시루 | 2012-05-0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공직생활 30년 동안 사표가 된 김종대 재판관의 이순신 공부!
지극한 정성, 충만한 사랑, 자력과 정의. 이 가치들이 정돈ㆍ합일되어 이순신의 인격을 이루었다. 이 인격에서 발현된 그의 탁월한 리더십은 오늘날에도 귀감이 되어 빛을 발한다. 품격 높은 탁월한 리더십! 이순신의 ‘정성, 사랑, 자력, 정직’이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가치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싸움이 끝나면 결과에 초연한 이순신의 성공요인’에 대해 저자는 30여년의 공부를 통해 일정한 체계와 뿌리가 있음을 발견하고 우리에게 명쾌하게 전해준다. 이순신은 ‘내적으로는 마음을 닦아 인격을 수양하고, 외적으로는 무관이 되어 나라와 백성을 지키겠다’는 목표를 이루어낸 성공한 사람이다. 이때 성공이라 함은 그 과정에서 실패와 좌절을 잘 극복했다는 것을 전제한다. 지금 왜 다시 이런 이순신의 인격과 정신에 주목하는 것일까? 이순신은 두뇌가 탁월한 천재가 아니었다. 문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무과에 재수로 겨우 합격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뿐만 아니라 세 번의 파면과 두 번의 백의종군의 기록으로 볼 때 당시 관료사회에 대한 적응력도 미흡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그가 압도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23전 23승의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이순신의 성공요인을 대부분 유비무환이나 거북선 창제 등을 들었지만 저자는 ‘리더십’의 발현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를 4가지 내면가치로 체계를 잡아 정리했다. 첫째, 자력.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제힘을 바탕 하여 주인정신으로 살았다. 지금도 온갖 비리와 부패에 관련된 기사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순신은 기본을 지키며 제힘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했다. 학연과 지연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믿고, 오히려 자신을 수련함으로써 모든 위기를 헤쳐 나아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경쟁사회에서 오히려 제힘을 기르고, 내면과 외면을 고루 성장시키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둘째, 정직. 오직 바른길로만 살았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비리를 저지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청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집안에 율곡 이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직자로 청렴함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멀리 지낼 정도였다. 바르게 살면 오히려 바보가 되는 것 같은 요즘 다시 이순신의 리더십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셋째, 정성. 지극한 정성스러움과 노력으로 살았다. 모든 일에 정성을 들이는 일은 어렵다. 한 가지를 끝까지 하는 것도 참으로 지난하게 느껴지고, 힘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일을 놀이처럼 하고, 온갖 정성을 쏟는다. 이순신이야말로 그런 성공한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전쟁놀이를 즐겼고, 커서는 무관으로써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 부하들을 훈련시켰고, 무기들을 정비했으며, 그 과정에서 거북선도 창제할 수 있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말처럼 요즘처럼 변화가 많은 시기에 우리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넷째, 사랑(충, 애민). 사랑이 충만하여 살았다. 사랑이라는 말 자체가 요즘에는 식상해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흔해졌다. 하지만 진심을 다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이순신은 용맹한 장수 이미지와는 달리 효심이 깊은 아들이자,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또 부하들에 대한 사랑도 이에 못지않았다. 또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전쟁에도 서슴없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이런 충만한 사랑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성공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와 각종 편의기기들이 발달되었지만 살아가면서 가장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이순신은 그 기본 중에 기본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람인 것이다. 곧, 이순신은 자신의 삶의 목표인 ‘인격수양과 구국제민’을 위해 4가지의 내면가치를 통해 한결 같이 노력했기에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이 4가지 중에서도 그를 성공으로 이끈 일반적이고 기층적인 가치는 ‘지극한 정성’과 ‘충만한 사랑’을 꼽는다. 정성과 사랑이야말로 만사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원천이자 성공의 핵심요소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순신 특유의 두 가지 가치, 즉 ‘자력과 바름’이 중층적으로 추가되어 상승효과를 만들면서 초인적인 리더십이 발현되고 구국의 기적을 달성하게 했다. 어느 시대에나 처한 상황이 조금씩 다르긴 해도 각자의 목표를 위한 치열한 삶과 개인의 노력은 있는 법이다. 극복해야 할 위기와 도전해야할 과제 또한 언제나 존재한다. 나라를 위해, 조직을 위해, 가정을 위해, 자신을 위해 이순신을 공부하는 것은 오늘날을 가장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이순신 같은 높은 인격의 준비된 리더가 필요하다. 헌법재판소 수석재판관, 30여 년 동안 이순신 정신을 공부한 이유는? 현재 헌법재판소 수석재판관으로 봉직 중인 김종대 재판관의 공직생활 정리이기도 한 이 책은 그가 30여 년 동안 인생의 스승으로, 봉사직의 사표로 따르던 이순신에 대한 깨달음을 여러 사람과 나누기 위해 쓰였다. 작은 위기에도 쉽게 흔들리는 현대인들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배울 곳이 없는 학생들에게, 정직함과 공정함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공무원들에게,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리더들에게 주는 귀한 약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곳곳에 묻어난다. 그래서 저자는 이순신의 삶 전체를 일대기식이 아닌 성공 리더십이 발현~완성되는 과정으로 구분해 정리했다. 제1기는 인격형성기로 태어나서 치열한 자기 수양과 신체 단련을 거친 뒤 처음 벼슬에 나아갈 때까지다. 제2기는 인격단련기로 벼슬에 나아가서 전라좌수사로 부임하기 전까지를 말한다. 나무로 치면 봉우리가 맺히는 시기로서 성공이 자리 잡아가는 시기다. 제3기는 인격구현기로 전라좌수사로 전쟁을 준비하고 임진년(1592년) 4대 승첩을 이룬 뒤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한산도에 주둔할 때까지다. 제4기는 인격완성기로 정유년(1597년) 초 투옥되었다가 출옥 후 명량해전에서 이기고 정유재란마저 승리로 이끌며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까지다. 그 중 저자는 이순신의 품성과 인격, 그리고 리더십이 가장 잘 나타난 제4기에 주목한다. 제4기에 나타난 이순신 리더십의 특징은 모함으로 투옥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어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자기수양, 5~6년간 양성한 조선 수군을 새 통제사가 된 원균이 전멸시켰을 때도 군사도 무기도 전선도 없는 상황에서 내린 선조의 재임명 교서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공인으로서의 책임감, 수백리 길을 돌면서 패잔병을 긁어모으며 12척의 전함으로 열세의 전투에 참전했음에도 승리로 이끄는 개척 정신, 매사 공사를 구분하는 선공후사 정신, 철저한 유비무환 정신, 공명정대한 부하 사랑 등 이순신의 리더십 원천이 가장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순신의 리더십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익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저자는 오는 9월 정년퇴임 이후 이순신 정신을 보급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구체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미 자아를 갖춘 어른보다 아직 배우고 익히는 데 힘을 쏟는 어린아이들에게 이순신 정신을 심어주는 것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살아온 30여 년을 이순신을 공부하는 데 썼다면, 앞으로의 인생은 이순신 정신을 보급하는 데 전력을 다할 예정이다. 충무공의 사상과 정신을 간단하고 쉽게 정리해 우리사회가 조금이나마 정화되고 밝아지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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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순신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유길만 | 경향미디어 | 2009-08-2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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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순신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유길만 | 경향미디어 | 2009-08-2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박정희 시대에 ‘이순신 성웅화’ 사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다. 원래 성웅이라는 말은 없는데 그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성웅은 성인과 영웅을 합한 말로 공자, 석가, 예수와 같은 성인이면서 알렉산더, 칭기즈칸, 나폴레옹 같은 영웅이라는 말이다. 그동안 그 말이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지만, 좀 지나친 단어라는 감도 든다.
박정희 시대는 한국의 번영을 이루게 한 시기로 그 시대의 정신적 유물은 오늘날에도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그래서 성웅 이순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히려 성웅의 옷을 벗겨 알몸이 되게 하여 인간 이순신을 보여주려 하는 사람은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불경스런 일을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박정희 시대 이순신 성웅화 작업은 대단한 것이었다. 십여 년에 걸친 현충사 성역화 사업, 난중일기 국보지정, 홍보책자 발간, 이순신 이야기 교과서 등재, 글짓기 대회, 각종 기념행사, 현충사 성역화와 국민 참배, 수학 여행 의무화, 탄신일 기념일 지정, 국가 제사 이순신 동상 건립, 영화제작과 단체 관람... 그러하였으니, 이순신이 이렇듯 국민영웅이 되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이순신 연구는 서가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이 이루어져서 더 이상 연구 할 것이 없게도 보인다. 이제 연구한다면 그의 인간적인 면을 밝히는 것이 남아있을 뿐이다. 따라서 본서에서 그를 서술함에 있어서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오해 없기 바란다. 이순신은 성웅, 신인(神人)은 아닐지라도 나라를 구한 위인이라는 데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동안 이순신 연구가 영웅적인면에만 너무 치중되었기에 필자가 인간적인 면을 집중 연구하게 된 것일 뿐이다. 본서에서는 이순신은 성웅의 옷이 벗겨져 우리 같은 인간이 된다. 그 대신 한 국가의 영웅이 아니라 세계의 영웅이 된다. 독자들은 여기서 위인의 연구는 정치 이데올로기적으로, 관(官)중심적으로 해서는 안되며 개인차원에서 순수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위인을 신격화 성웅화하여 왜곡시키는 사람들은 그 위인을 진정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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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순신은 전사하지 않았다
남천우 | 미다스북스 | 2009-07-1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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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순신은 전사하지 않았다
남천우 | 미다스북스 | 2009-07-1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이순신은 전사하지 않았다.』에는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의 군대가 왜의 10만 대군과 어떻게 싸웠음을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어 규명되어 있다. 명량해전은 이순신이 패잔선 13척으로 크게 이기고 왜군의 서해로의 진격을 아예 단념하게 만든 중요한 해전이다. 패잔병력 2,300명, 전선 13척의 이순신 수군이 빠른 조류를 어떻게 이용하였기에 적이 다시는 덤벼들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크게 혼을 내 주었는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것이 아니라 생존했으며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연구한 결과를 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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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간의 역사 1
미하일 일린 | 신원문화사 | 2010-08-0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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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간의 역사 1
미하일 일린 | 신원문화사 | 2010-08-0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밀레니엄 북스 시리즈 제 96권 『인간의 역사 1』
<인간의 역사>의 원제는「인간은 어떻게 해서 거인이 되었는가」로, 전편인 '선사편'은 1940년에, 후편인 '고대편'은 1946년에 발표되었다. 인류의 문화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전체적인 흐름에서 바라보고 있고 보금자리인 숲을 떠난 인간이 어떻게 모든 것에 우월한 존재로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과학적 근거와 인간적인 가치관으로 풀어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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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간의 역사 2
미하일 일린 | 신원문화사 | 2010-08-0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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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간의 역사 2
미하일 일린 | 신원문화사 | 2010-08-0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밀레니엄 북스 시리즈 제 97권 『인간의 역사 2』
<인간의 역사>의 원제는「인간은 어떻게 해서 거인이 되었는가」로, 전편인 '선사편'은 1940년에, 후편인 '고대편'은 1946년에 발표되었다. 인류의 문화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전체적인 흐름에서 바라보고 있고 보금자리인 숲을 떠난 인간이 어떻게 모든 것에 우월한 존재로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과학적 근거와 인간적인 가치관으로 풀어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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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도의 발견
자와할랄 네루 | 우물이있는집 | 2012-05-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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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도의 발견
자와할랄 네루 | 우물이있는집 | 2012-05-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옥중에서 쓴 네루의 대표작
네루는 마지막 수감생활 중 이 책을 썼다. 책을 쓸 당시는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해 있을 때여서 그가 어린 시절에 대해서 토로하듯이 ‘자괴감’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그는 찬란하고 면면히 이어져오던 인도의 활력과 생기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철저하게 ‘인도적인’ 시각으로 탐색한다. 그는 인도의 곳곳, 특히 시골의 민중들을 만나고, 유적들을 돌아보면서 인도에 대한 고뇌에 빠졌고, 서구적 시각, 즉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성이 강조되던 시기에 이 작업을 통해 인도인에게, 나아가 동양인에게 역사적 자부심을 부여해주고자 했다. 문화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훨씬 앞서 있던 인도가 어떻게 생성되고 발전해 왔는지, 어떻게 뒤쳐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그의 기술은 인도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이 책은 연도별 서술이나 사건의 나열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도의 정신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크나큰 장점을 갖고 있다. 특히 그의 동양적 세계관은 제국주의, 서구의 기독교문화, 서구의 영웅들에 대한 날카로운 해석에서 두드러진다. 그리고 그의 장점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유연한 태도에서 더욱 돋보인다. 그것은 그간 서양이 보여왔던 오만하고 편협한 태도가 아니라 상호이해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것이다. 이 책은 『세계사 편력』과 함께 그의 대표적 저작이다. 고대 인도문명의 특징-시민을 위한 문명 인더스계곡에서 시작한 문명은 여타의 문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규모와 탁월함을 지니고 있다. 이 문명은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의 자매문명 등과 교역을 했으며 상인계급이 발달했다. 이미 솜을 이용해서 직물을 짰고, 욕실, 셋방까지 딸린 개인주택도 있었다. 특히 잘 정돈된 하수도 시설이나 계획적인 거리는 이 문화가 얼마나 고도로 발달되어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여타의 문명에서 발견되는 대규모 건축물들은 주로 사원이나 왕릉인데 반해 모헨조다로, 하라파 등지에서 발견되는 대규모 건축물들(예를 들면, 대형 공중목욕탕, 하수도시설)은 대개 시민들의 편리를 위해 지어진 것들이었다. 혼성문화-포용과 관용 역사적으로 인도는 다양한 인종이 수없이 결합해왔다. 그들은 혈통도 다르고 관습도 상이하다. 심지어 언어며 음식, 의복에 이르기까지 상이하다. 아프간과 전통적 인도인인 드라비다족, 그리고 아리안족은 공통점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정도이다. 그런데 인도는 이 모든 다양성을 포용하여 하나의 일관된 문화를 형성하여 왔다. 기독교, 유대교, 파르시교, 회교처럼 인도에서 발생하지 않은 종교를 믿는 사람이 인도에 와서 정착하면 몇 세대 만에 ‘인도화’되었다. 물론 정복자가 인도에 와서 온갖 살육을 한 적은 있지만 그들이 떠난 뒤에 남은 모든 사람들은 인도화되었다. 신앙의 변화도 차이를 발생시키긴 했지만 정신적인 배경을 바꾸지는 못했다. 따라서 그 종교의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즉 회교도인 인도인은 회교가 지배적인 터키, 아라비아, 이란 등 어떤 나라에 가더라도 인도인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종합과 조절의 문화 브라만은 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를 배출했고 다른 계급의 존경을 받았다. 그들은 물질적인 관심에서 벗어나 인생문제를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무사계급인 크샤트리아는 강력하기는 해도 존경을 받지는 못했다. 농민, 장인, 상인계급인 바이샤나 농민을 제외한 노동자, 미숙련 노동자인 수드라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유동적인 상태에 있었다. 이 제도의 경직성은 사실 훨씬 뒤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기타 다른 지역이나 문명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예를 들면 중세유럽을 지배하던 로마교회가 그렇다. 말하자면 인도사회에서 카스트는 상이한 여러 종족을 사회적으로 조직하고 합리화하려는 시도였다고 네루는 말한다. 또한 다른 문명이 대개 집단노예제나 대규모 노동노예제도에 의지했던 것과는 달리 인도에는 솔거(率居)노비 몇몇이 있었을 따름이라는 사실에서도 인도사회의 카스트는 계급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기능의 구분, 전문화의 양상 속에서 그것을 종합하고 조절하려는 노력이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인도문화의 특징-촌락공동체, 카스트, 대가족제도 인도 사회구조의 특징은 촌락공동체, 카스트제도, 그리고 대가족제도이다. 이 세 기둥은 개인이 아닌 집단에 바탕을 두고 있다. 촌락공동체는 자신들의 자유를 스스로 지켰고, 왕은 허락 없이는 어떤 군인도 촌락을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 점차 사회가 중앙집권화되는 가운데서도 이 촌락공동체는 유지되었으나 영국의 침탈로 인해 사라지고 말았다. 카스트가 오랫동안 지속된 이유는 비경쟁적이고 탐욕이 없는 가운데에서의 응집력에 있다. 카스트는 무갈제국의 통치기간에도 살아남았고, 회교, 불교의 전파에도 무수한 고투를 벌이며 지속되었다. 화석(化石)화된 생각, 즉 인도의 카스트가 특정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교묘한 방법이라는 차원을 넘어 네루는 서양의 개인주의와는 다른 형태로 조정되고 발전될 것을 강조한다. 또 하나의 특징인 대가족제도 하에서는 개인의 이익이나 포부보다는 집단, 즉 가족의 이익이 중시되었다. 이 대가족제도에서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을 버리고 사회화되었다. 이 세 가지 특징은 인도가 늘 개인이 아닌 집단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말하자면 진보보다는 사회의 안정에 그 목표를 두고 있었다. 그 점의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훗날 사회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고대인도의 선진적 문화 1. 생활과 일 자타카(本生經, 불교의 12부 경전의 하나)를 보면 고대인도의 생활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 고대인도에는 일종의 의회가 있었으며 자치적인 촌락회의가 있었다. 수많은 장인과 기예가 외에도 교사, 내과의, 외과의, 상인과 무역업자, 음악가, 점성술사, 청과물상, 무용수, 마술사, 곡예사 등등이 있었다. 이중에서도 상인협회와 수공업 길드가 눈에 띄는데 왕은 이 강력한 길드에 반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할 수 없었다. 또한 해운업이 발달하여 해외무역상들이 관세를 물었다는 기록도 있다. 수출도 활발해서 비단, 향료, 약품, 보석 등이 거래되었고 특히 철을 다루는 데 탁월해서 인도의 전쟁무기는 유명했다. 2. 문자, 수학, 의학 모헨조다로에는 아직도 해독되지 않은 문자가 있으며, 도자기류에는 브라미(카로시티와 함께 인도의 2대 알파벳)체의 글이 새겨져 있다. 또한 기원전 6, 7세기 경에는 인도에서 산스크리트어 문법책이 나올 정도로 발달해 있었다. 의학의 발달은 사지 절단, 제왕절개, 백내장 수술은 물론 기원전 3, 4세기 경에는 동물병원이 있을 정도였다. 고대인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수학의 발견이었다. 0의 발견, 마이너스 부호 사용, 그리고 대수에서 양을 표시하기 위해 알파벳 문자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10은 초기 인도에서 셈법의 기초를 이루고 있을 정도였다. 인도 문학예술의 위대함 산스크리트어 문학은 인류역사상 가장 활기에 넘치는 문학이다. 기원전 6, 7세기 경의 위대한 문법학자인 파니니가 연극적 형식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는 걸로 봐서 고대인도에는 일찍이 연극이 발달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산스크리트어는 유럽의 고대언어 및 현대언어와 공통되는 어원을 갖고 있다. 특히 리투아니아어는 가장 가깝다. 인도예술의 특징은 내면적인 진리를 담으려고 했다는 데 있고, 자연과 자신을 일치시키고 우주와 일치시키려는 위대함을 지니고 있다. 인도사회의 문학예술적 발전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세계 모든 농민계급 중에서 인도의 농민이 가장 교양 있는 편이라는 하벨의 의견에서도 알 수 있다. 특히 베다경,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는 인도의 자랑이다. 그중에서도 바가바드 기타는 인도문학의 백미이다. 그것은 ‘알려진 모든 언어로 씌어진 현존하는 시 중에 가장 아름답고, 아마도 단 하나의 진정한 철학적 노래’라고 평가된다. 영국의 산업적 발전에 대한 새로운 시각 네루는 산업혁명 후 영국의 급격한 발전이 인도의 식민지 침탈에 있다고 단언한다. 인도에 대한 영국의 약탈은 수세대 동안 무자비했으며, 지배의 역사가 오래된 곳일수록 피폐함이 더욱 심했다. 미국의 저술가 브루크 애덤스는 ‘세상이 시작된 이래 그 어떤 투자도 인도 약탈로부터 거둔 만큼의 이윤을 얻어낸 적이 없을 것이다.’고 말한다. 이는 지금껏 방적기, 동력베틀의 발명이 영국의 부의 축적을 가속화했다는 통설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다. 인도 민족주의와 아시아 민족주의 그리고 국제주의 인도의 민족주의는 영제국주의와의 투쟁에서 강화되었다. 그 중심에 간디가 있었고 국민회의가 있었다. 인도의 독립과 관련하여 네루는 간디와 이견도 많았다. 간디는 수억 인도인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적 인물이었고 네루는 독립운동가이며 현실정치가였다. 따라서 상황인식에서 차이를 빚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네루는 위기 때마다 나타나는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최우선적으로 인도의 독립을 이루려고 하였다. 그것만이 아시아 민족주의가 연대하고 그 자유로운 바탕에서만 국제주의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간디와 네루의 이 균형이 바로 민족주의와 국제주의가 함께 발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인도의 역사를 통한 우리 역사 되돌아보기 영국은 인도를 철저히 자신들의 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식민 기간 동안 악랄한 약탈은 물론 철저한 인종주의로 일관했다. 그리고 그들의 보수성은 인도에 어떠한 교육이나 산업적 발전도 허용하지 않았다. 모든 곳에서 모든 산업이 파괴되어 인도를 공업제조국에서 농업국으로 전락시켰다. 인도 곳곳에서 만성적인 기아가 뒤따랐다. 그런데 영제국주의는 인도의 발전이 자신들의 도움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네루의 인도 이야기에는 마치 식민지 조선이 겪었던 모든 문제들이 유사하게 등장한다. 시대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에 안주하는 지도자들, 외세에 영합하는 세력들, 각 세력의 분열 등은 뼈아픈 식민지적 경험을 되돌아보게 한다. 간디와 처칠에 대한 네루의 이해 윈스턴 처칠은 인도의 자유에 대한 철저한 적대자였다. 그는 1930년에 ‘간디와 국민회의와 그들이 표방하는 모든 것을 분쇄해야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네루가 보기에 처칠은 인도를 소유하고 착취함으로써 힘과 부를 얻는 착취자에 불과했다. 간디에 대한 네루의 시선은 독특하다. 말하자면 네루는 간디를 존경하지만 정치적 노선을 늘 같이 하지는 않는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사태가 급박해지자 국민회의 및 지도자들은 간디의 시민불복종 노선을 따라 감옥에 들어갈 수만은 없었다. 1940년과 1941년에 간디가 전쟁 및 자유 인도와 관련하여 비폭력 문제를 제기했을 때 국민회의는 간디와 정면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국민회의의 주장으로, 인도가 독립할 수만 있다면 영국을 도와 전쟁에 참가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간디에게 받아들여졌다. 이것은 평생의 철학을 인도의 독립과 관련하여 결정한 고통스러운 결정이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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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과 사건으로 읽는 조선왕조사
서정우 | 세시 | 2012-02-09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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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과 사건으로 읽는 조선왕조사
서정우 | 세시 | 2012-02-09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재미있는 이야기로 읽고 인문학적 깨달음을 얻게 되는 역사책
소설적 재미와 인문학적 지식의 조화로운 만남. 재미있게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역사의 흐름을 알게 되는 책. 선민들의 지혜와 그 시대상황을 알 수 있게 하는 책. <인물과 사건으로 읽는 조선왕조사> 이 책은 오백년 조선왕조사 중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소설 형식을 빌어 쉽고 재미있게 풀이하고 있다. 또한 그 사건으로 인하여 전과 후의 역사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고 후대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를 인문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취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고려왕조를 뒤엎고 조선 창건의 기반을 세운 정도전부터 진정한 관리의 표상인 황희, 똥통 속에서 세조를 비판한 시대의 고아 김시습, 이조전랑의 벼슬을 놓고 갈라진 서인과 동인, 민중의 선구자 전봉준, “을사오적을 찢어죽이소서”라고 절규한 조선 최후의 유신 최익현에 이르기까지 성군과 폭군, 충신과 간신, 수차례의 사화와 전쟁 등을 소설의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독자는 상상을 통한 소설적 재미를 느끼다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역사적 체험을 갖게 됨은 물론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음을 알게 된다. 또한 작은 글상자에 담아놓은 추가적인 설명을 통해 놓치기 쉬운 상식까지 한 눈에 잡을 수 있어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까지 할 수 있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과거에서 참 많이 떠나 온 것 같지만 그리 멀리 떠나질 않았고, 역사는 흘러간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 주변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바라본 조선왕조의 오백년 역사는 역사이기 이전에 현재의 어떤 상황에 대한 해답서인 것이다. 또한 그 시대에 살았던 개인의 삶 역시 다만 과거가 아니라 곧 시대의 삶이고, 한 시대를 대표하니 역사의 거대한 숨소리인 것이다. ……따라서 역사를 찬찬히 짚어보며 느끼고 깨닫고자 하는 자에게는 그 어떤 서적을 읽는 것보다 더한 축복이 될 것이다.” 역사는 재미있고 역사는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준다. 이 사실을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누구라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역사 속 인물이 마치 옆집 아저씨처럼 가까워져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미래를 제시해주기도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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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윤섭 | 북큐브네트웍스 | 2011-09-2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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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윤섭 | 북큐브네트웍스 | 2011-09-2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5 지원기기:
임진왜란 [壬辰倭亂]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병자호란 [丙子胡亂] 1636년(인조 14) 12월∼1637년 1월에 청나라의 제2차 침구(侵寇)로 일어난 조선·청나라의 싸움. 우리 역사를 바꾼 큰 줄기이자 희대의 영웅을 탄생 시킨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어디까지 알고 계신가요? 역동적이고 스펙타클한 역사의 현장을 이야기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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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인열전
이수광 | 북큐브 | 2011-12-28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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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인열전
이수광 | 북큐브 | 2011-12-28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조선의 뒷골목 이야기를 통해 본 조선 역사 읽기. 이 책을 통해 뒷골목과 저잣거리를 활보하며 자유와 파격과 활력 넘치게 살았던 잡인들의 삶 속에서 조선시대의 새로운 가치와 가능성, 안타까운 좌절의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신분제와 유교적 관습으로 포장된 사회에서 뒷골목과 저잣거리를 활보하며 기행과 파행으로 사회를 조롱하던 잡인들의 모습을 통해 조선의 숨겨진 모습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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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제임스 딘
데이비드 달튼 | 미다스북스 | 2010-04-2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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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제임스 딘
데이비드 달튼 | 미다스북스 | 2010-04-2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이 책은 위대한 평가를 받는 역사적 인물이나 유명인에 대한 평전이 주를 이루고, 대중문화 인물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그들에 대한 수준 높은 전기 또는 평전이 전문한 국내의 출판계에 제대로 된 대중인물 평전을 선보이고자 기획되었다. 《제임스 딘- 불멸의 자이언트》는 제임스 딘 개인과 그가 살았던 사회적, 문화적, 시대적 배경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며, 대중문화 인물의 전기도 제대로만 만들어진다면 다른 역사적 인물의 전기와 어깨를 겨룰 만하다는 걸 보여주는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당시 제임스 딘을 알았던 모든 주변인물들의 생생한 인터뷰로 그의 생애를 정리해 나간다는 것이다. 24년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갔지만, 그의 인생은 그를 알고 사랑하고 보살피고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600여 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책 뒷부분의 첨부된 참고문헌만 보더라도 저자가 제임스 딘의 진정한 모습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얼마나 많은 자료를 찾았는지 알 수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책에는 80여 장이 넘는 자료사진이 들어 있다. 제임스 딘의 어릴 적 모습이나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스타가 된 후에 찍은 사진들 외에도 작은 고향마을 페어마운트에서 그가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살며 서서히 두각을 드러내는 모습, 당시 그와 관련된 신문기사나 책자 포스터, 그가 직접 쓴 편지, 지금은 결코 볼 수 없는 당시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의 스틸 사진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제임스 딘과 관련되어 나온 다른 출판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훌륭한 자료들이 담겨 있다. 이 책은 한 인물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시기인 사후 20년을 전후하여 집필된 것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임스 딘 사후에 일어난 일련의 현상들은 당시로서는 굉장한 것이었다. 물론 오늘날에 와서 그 영향력이 전무해졌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제임스 딘이 사망한 지 20년쯤 되는 시점에서 이 책을 집필함으로 당시의 그다지도 강렬했던 사회 현상과 분위기로부터 한 발짝 벗어나서 객관적인 시각과 직관력으로 제임스 딘이라는 인물뿐 아니라 그 당시의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 모습까지도 정확하게 펼쳐 보일 수 있었다. 제임스 딘, 반항아에서 불멸의 자이언트로 제임스 딘은 24세의 짧은 생애 동안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생물학적인 기간 동안 그가 대중들에게 남겨 놓은 것은 영화 속 이미지다. 그러나 그의 정열적인 삶과 개성은 아직도 대중들의 마음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그는 철저하게 ‘제임스 딘’을 만들어 나갔다. 세 편의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어느 누구도 소화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는 독특한 연기방법으로 그 역할들을 창조해 나갔다. 또한 그는 엘리아 카잔, 아서 밀러, 말론 브랜도, 마릴린 먼로 등 유명 배우들이 거쳐간 ‘액터스 스튜디오’에 들어가 ‘메소드(Method)’ 연기를 배웠다. 그러나 그는 연기수업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자신만의 괴물을 충실히 창조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토로했다. “나는 나를 닮은 창조물이 필요해.” 그는 ‘제임스 딘’을 만든 창조자이며, 발명가다. 〈에덴의 동쪽〉에서 제임스 딘은 ‘반항아’의 전형을 연기해냈다. 영화는 반항적이고 비타협적인 칼이 불러오는 극적인 대립에 초점을 맞춘다. 제임스 딘은 카인의 비행청소년 버전이라 할 칼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의 신경시스템을 완벽하게 활용했다. 그 역할은 어찌보면 돌연변이다. 어제의 자신과 다른 오늘의 자신은 미래 사회에 적합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이다. 나는 어제다. 나는 내일이다. 나는 탄생을 거듭 겪어내는 과정을 통해 힘과 젊음을 유지한다.” 제임스 딘은 멸종을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킨 ‘돌연변이 제왕’이라고 할 만하다. 〈이유 없는 반항〉은 영원한 청춘의 교과서가 되었다. 청소년들만의 세계를 자유롭게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청춘문화에 발동을 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천문대 계단에서 플라톤이 가리켰던 오래된 대저택에서 주인공들은 자신들만의 ‘가상의 가족’을 만들기도 한다. 이제 제임스 딘은 ‘10대의 토템’이 되었다. 청바지, 빨간 재킷, 부츠, 꾸밈없는 그의 몸가짐은 청춘이라는 아이콘을 상징적으로 만들어냈다. 결국 청춘의 우상(Idol) 제임스 딘은 원형적인 미국 소년이자, 미국의 이미지인 동시에 보편적인 인물로 청춘의 화신이 된 것이다. 1950년대 미국사회의 거울이자 자화상 1849년은 미국의 골드러시(Gold Rush)가 일어난 해이다. 그리고 100여 년이 지난 20세기 중반 미국은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물질적인 진보를 이룩했다. 마침내 그들은 ‘윤택함의 꿈(Fat Dream)’을 달성했던 것이다. 그러나 1950년대의 풍족한 사회에 대한 반발로 하위문화가 생겨났다. 이제 아메리칸 드림은 정체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대공황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안락한 삶에 대한 갑갑한 불안감을 증식시켰다. 사회에 순응시키려는 억압적인 음모를 거부하고, 부모들이 건설한 물질적인 낙원을 부정한 10대들은 무비스타와 록 뮤직을 통해 자신들만의 환상을 키워 나갔다. 처음으로 독립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된 10대들은 노래가 언어이고, 유희가 노동이며, 현실이 곧 환상인 세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창조해냈다. 유년기에 품었던 폭력과 감수성, 자유에 대한 소망이 실현 가능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제임스 딘이 칼 트래스크로, 제임스 스타크로, 제트 링크로, 미국의 에덴동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카인으로, 환상의 파괴자이며 파괴적인 청춘으로, 난폭한 변화의 대리인이자 새로운 시대의 전령으로 모습을 보인 게 바로 이 시점이다. “영웅이 시대의 아이”라는 말은 제임스 딘을 위해 탄생한 언어이다. 시대의 흐름을 한 발짝 앞서 시대의 흐름을 주도한 제임스 딘. 그는 미국사회의 보이지 않는 음지를 잘 드러내는 미국의 거울이자 자화상이다. 무비스타 제임스 딘은 미국적인 삶에 내포된 역설을 풀어내는 게 가능하다는 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이라는 거울을 통해 미국의 모습을 비추었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연기방법은 액터스 스튜디오의 그것을 그대로 물려받은 듯하다. 제임스 딘 현상 1955년 9월 30일 오후 5시 45분, 샐리너스로 향하던 제임스 딘은 고속도로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은 전세계로 타전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열광적인 팬들은 제임스 딘이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믿길 원했다. 세계 도처에까지 퍼져나간 숭배행위, 죽음에 대한 불신과 죽은 제임스 딘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들은 그가 사람들에게 어떠한 존재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1주기 전까지 날아든 편지는 5만 통이 넘었다. 숭배자들은 그의 ‘환생’과 ‘부활’을 고대했다. 미국에서는 팬클럽이 결성되고 제임스 딘 기념재단이 설립되었다. 인디애나주 한곳에는 무려 26개의 팬클럽이 결성될 정도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제임스 딘이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연기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딘의 죽음에 대한 반응은 광범위하고 자연발생적이었다. 일명 ‘집단 히스테리’라 명명할 수 있는 이러한 현상은 그가 남긴 물건들에게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와 죽음을 함께 했던 포르셰 스파이더 잔해는 폐차장에서 1천 달러에 팔렸고, 그의 8센티미터 흉상은 30달러에, 청동으로 만든 흉상은 150달러에 팔렸다. 제임스 딘의 빨간 재킷도 수천 벌이 팔려 나갔다. 그의 이름을 달고 나온 초기의 음반 여섯 장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한 잡지 <지미 딘 돌아오다>는 50만 부가 팔릴 정도로 죽은 제임스 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사람들은 그들의 주머니를 비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지금 제임스 딘인가? 그것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진입하는 ‘10대’를 확연하게 드러낸 인물이 바로 제임스 딘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0대의 정체성(Identity)을 확립했다. 이전의 10대는 어떠한 정형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돈을 벌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다. 그러나 제임스 딘은 영화로 10대의 목소리를 대신 전달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임스 딘의 죽음과 함께 모든 10대는 그의 팬임을 자처하면서 그를 숭배하는 행위에 동참했던 것이다. 지금 10대가 문화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제임스 딘에서 촉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를 닮고 그가 했던 행동들은 10대들에게는 그림자처럼 따라 붙게 된 것이다. 제임스 딘은 ‘불멸의 자이언트’였다. 그의 무게는 어느 것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무거웠으며, 그의 이미지는 어느 것도 희석시킬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마술 같은 제임스 딘은 영원히 10대의 가슴속에 살아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