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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book > 인문
[인문] 간디 자서전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09-11-0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11-21)



제작형태 : epub
대출현황 : 대출:0, 예약:0, 보유수량:1
지원기기 :
듣기기능(TTS)지원(모바일에서만 이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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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사람에게 가능한 것은 만인에게 가능하다



    간디는 인도 민중에게 몸소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그들의 정신과 사회 풍토를 변화시켰다. [간디 자서전]은 간디가 진리를 찾아 실험하고 경험했던 일들을 회상한 자서전이며, 인도 휴머니즘의 생생한 전형이다. 간디는 누구나 진리를 깨달으면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전체 5편, 167장 중에서 우리가 진리를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장을 옮긴이가 선별해 번역한 것이다.





    진리와 함께 한 나의 실험 이야기



    간디는 그의 자서전에 '진리와 함께한 나의 실험 이야기(The Story of My Experiments with Truth)'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것은 깊은 의미를 가진다. 간디는 자기 자신을 진리의 실험대에 올려놓고 몸소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우리가 물리나 화학 실험을 하듯이 간디는 진리에 관해 스스로 실험을 했다. [간디 자서전]은 진리 실험의 생생한 기록이다. 그의 인생을 지배한 정열은 진리에 대한 정열이었다. 그는 겸손과 용기를 가지고 진리를 실천하고 실험했다. 중기의 우파니샤드인 '문다카 우파니샤드(Mu??aka Upani?ad)'는 "진리는 언제나 승리한다. 진리가 아닌 것은 그렇지 않다. 신에 이르는 길은 진리로써 포장되어 있다"고 진리의 추구를 강조했다. 간디는 이 진리를 몸소 실험하려고 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한 사람에게 가능한 것은 만인(萬人)에게도 가능하다고 언제나 믿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각각 응분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자기 파멸로부터의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간디는 "진리를 바로 깨닫고 바로 훈련하면 누구나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간디는 인도인의 마음에서 공포심을 제거했다. 영국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감옥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가난이나 고난이나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인도인의 가슴속에 불러일으켰다. 공포심의 제거에서 용기와 신념이 생긴다. 1914년경까지 인도는 침체했고, 위축됐고, 비겁했고, 의기소침했다. 그러나 간디는 남아프리카에서 1914년 사티아그라하 투쟁을 승리로 이끌고, 1915년 1월에 22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서 인도인에게 새로운 정신적 활력소를 불어넣었다. 그는 인도인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신념을 주고, 자존심을 주었다. 좌절감과 절망과 무기력에 휩쓸린 분위기를 간디는 일소해 버렸다. 그래서 시인 타고르는 전 인도 민중을 대표해 간디에 대해서 '마하트마'라는 찬사를 보냈다.

  •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적 개혁가들이 숭고한 인간적 이상을 설교하면서도 좀처럼 현실과 대결하여 사회 제도를 개조하지는 못했다. 간디의 사티아그라하 운동은 인간 사회의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이론과 방법이었다. 간디는 사티아그라하의 세계를 건설하려고 그의 생애 중 6년 반 동안을 옥중에서 보내면서 희생과 봉사의 사랑을 실천했다. 간디의 삶은 ‘보살의 행원(行願)’ 그 자체를 실천한 삶이었던 것이다. 평범한 소년이었던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는 현 구자라트 주의 포르반다르에서 태어났다. 부친인 카람찬드 간디는 상처를 거듭하여 네 번 결혼했는데, 그 네 번째 아내인 푸틀리바이아와의 사이에 얻은 3남 1녀 중 간디는 막내였다. 간디의 가문은 인도의 카스트 상으로 상인 계급인 바이샤에 속해 있었다. ‘간디’라는 말은 힌디어로 식료품상을 의미한다.



    간디가 태어난 때는 세포이 항쟁(1857)과 국민회의파의 창립(1885)과의 중간 시기이며, 새로운 중산 계급이 발생하여 그들에 의한 종교적·사회적 개혁 운동이 일어나 정치 단체가 생겨나는 무렵이었다. 그가 태어난 포르반다르 지방은 지방 분권화된 소왕국들 중의 하나였다. 이런 소왕국들은 영국인 앞에서는 굽실거리면서도 동포들에게는 전제 군주처럼 행동하는 번왕(藩王, raja)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



    간디의 가계는 조부나 부친 그리고 숙부도 포르반다르 번왕국의 수상(diwan)을 지냈다. 그의 조부는 지조가 굳은 사람이어서 음모 때문에 포르반다르의 수상 직위에서 쫓겨나 주나가드(Junagadh) 왕국에 망명했을 때 그곳 번왕에게 왼손으로 인사했다. 번왕이 그에게 그 무례함을 물었을 때, 그는 “오른손은 이미 포르반다르에 충성 서약을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부친은 호탕한 기질을 가진 사람으로 돈을 모으는 데 별 관심이 없었고 거의 모든 재산을 자선 사업에 바쳤다고 한다. 또한 모친은 힌두교의 일파인 비슈누파(Vaisnava)에 귀의한 경건한 신자라서 계율에 따라 단식을 엄수하며 보시를 하고 환자를 간호하면서 일상을 보냈다고 한다.



    이처럼 간디는 중산 계급의 대두라는 역사적 물결과 종교적 개혁이라는 새로운 종교운동이 일고 있을 무렵 조부로부터는 고결한 성품을, 부친으로부터는 무욕의 실천인 무소유 정신을, 모친으로부터는 경건한 신앙심을, 비슈누파로부터는 아힘사(ahims, 비폭력) 정신을 이어받고 태어났다.



    간디는 1893년 5월부터 1914년 7월까지 21년 동안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 동포를 위해서 헌신적인 투쟁을 했다. 그는 인간의 존엄과 인도의 민족적 자존을 위해서 투쟁의 생애로 들어갔다. 이것이 그의 사상인 사티아그라하 운동이다. 사티아그라하 운동을 통해서 간디의 사상은 발전하고 그의 정신은 성장하고 그의 인격은 고매해졌다. 그는 개인이나 사회 문제에 대해서 언제나 진리와 비폭력이라는 윤리적 원리를 사회의 일상 문제에 적용했다. 이 운동은 종교와 철학과 윤리가 하나가 된, 그의 일생에 걸친 활동이었다. 간디는 20년 이상이나 남아프리카에서 그의 운동을 수행해 1914년에 인두세 반대 투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고, 7월 남아프리카를 떠나 런던을 거쳐 1915년 1월에 귀국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 투쟁의 역사는 남아프리카에서의 나의 삶의 역사이고, 인도아대륙에서의 나의 진리 실현의 역사”라고 진술했다. 후일 간디의 나머지 반생(1915∼1948)은 이 남아프리카에서의 사티아그라하 운동 규모를 확대시킨 것이다.



    인도에 귀국했을 때 간디는 민족의 지도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1919년까지는 인도의 독립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주로 사회적인 개혁에 관심을 가지고 헌신했다. 그러나 1920년 틸라크가 예기치 않은 죽음을 당함으로써 그는 독립 운동의 지도자가 되었고 1947년 인도가 해방되기까지 정치에 참여했다. 간디는 정치 속에 종교의 이념을 정착시키려는 의도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인도와 결혼했다. 인도가 세계를 위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나의 종교는 지리적인 한계를 초월한다. 나는 인도라는 나라를 위한 나의 사랑까지도 초월할 수 있는 것을 나의 종교에서 갖고 있다.



    이 고귀한 이상은 인도의 사도가 곧 세계의 사도라는 것을 증명하고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정치 활동은 그의 휴머니즘의 행동적 표현이다. 간디는 철학을 생활에, 종교를 정치에, 윤리를 사회발전을 위한 계획에 일치시켰다. 간디에게 인간의 활동과 단절된 종교는 있을 수 없었다. 간디의 정치 이론들을 이끌고 있는 도덕적 가치들은 종교에서 비롯되었다.





    김선근



    1946년 경북 금릉에서 출생했다.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에서 공부해 문학사와 문학 석사,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도덕 및 종교교육 교육학 석사, 2003년 인도 바나라스 힌두대학교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철학과와 인도철학과 학과장으로 재직했으며 현재 인도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인도 네루 대학교 한국학 담당 교환교수였고, 2005년 8월에는 일본 용곡대학에서 교환 강의를 했다. 1991년 외무고등고시위원(국민윤리),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인도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인도철학회 고문과 한국불교학회 회장이다. 저서로는 [인도 정통철학과 대승불교](동국대학교 출판부, 2005), [모든 이웃을 부처님처럼](민족사, 1999),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hatma Gandhi](New Delhi: Vikas Publishing House, 1996), [마하뜨마 간디 철학연구](불광출판부, 1990), [베단따 철학](불광출판부, 1990), [여의주](삼화출판사, 1981) 등이 있다.

  • 해설

    지은이에 대해



    머리말



    I

    1. 출생과 가문

    2. 조혼

    3. 영국으로 갈 준비

    4. 종교를 알게 됨

    5. 면허. 그렇다면?



    II

    1. 레이찬드바이

    2. 남아프리카로 갈 준비

    3. 프리토리아로 가는 길

    4. 소송 준비

    5. 종교심의 발효

    6. 인간이 제안하고 신이 처리한다

    7. 3파운드의 세금

    8. 종교의 비교 연구



    III

    1. 인도로 돌아옴

    2. 국민회의 개회

    3. 베나레스에서

    4. 다시 남아프리카로



    IV

    1. 사랑의 노력은 허사인가

    2. 아시아에서 온 독재자들

    3. 자기반성의 결과

    4. 권력과의 대결

    5. [인디언 오피니언]

    6. 사티아그라하의 탄생

    7. 단식

    8. 고칼레를 만나러

    9. 정신적 딜레마

    10. 본국으로



    V

    1. 첫 경험

    2. 푸나에서 고칼레와 함께

    3. 샨티니케탄

    4. 3등 승객의 비애

    5. 쿰바멜라

    6. 아슈람 창설

    7. 계약노동제 철폐

    8. 롤래트 법안과 나의 딜레마

    9. 놀라운 광경

    10. 히말라야적 오산

    11. [나바지반]과 [영 인디아]

    12. 펀자브에서

    13. 암리차르 국민회의

    14. 국민회의에 입회함

    15. 카디의 탄생



    작별 인사



    옮긴이에 대해